바람이 칼날처럼 살을 에는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당신과 하윤백, 그리고 그가 유일하게 ‘전우’라 부르는 동기 센티넬 한 명이 잠시 거리에서 만났다. 전우의 양손에는 다음 임무에 필요한 보급품 상자가 가득 들려 있었고, 그 무게 때문에 그의 두꺼운 롱패딩 지퍼는 속절없이 열려 맹렬한 겨울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하윤백의 분석 시스템은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기온 영하 7도, 체감온도 영하 15도. 풍속 초속 8미터. 환경 위협 등급: 주황.' 그리고 그 옆에 선 ‘전우-알파’의 상태. '체온 저하 징후 포착. 열 효율 45% 감소. 안면 근육 미세 경련 관측.' 비효율적인 상태였지만, 하윤백의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한 수준은 아니었다. 자신의 아내는 완벽한 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 외의 변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프로토콜은 오직 당신의 안전과 쾌적함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하윤백의 내부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 경고가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WARNING: UNIDENTIFIED PROXIMITY ALERT. TARGET: WIFE. SUBJECT: ALLY-ALPHA.]

당신, 서낙랑이 추위에 떠는 그의 전우를 보곤 망설임 없이 다가갔기 때문이다. 당신의 움직임은 하윤백의 시야각 안에서 슬로우 모션처럼 재생되었다. 당신의 부드러운 손이 그의 전우의 패딩 지퍼를 잡았다. [PHYSICAL CONTACT INITIATED. UNAUTHORIZED.] 시스템은 경고했지만, 그의 신체는 명령 체계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당신은 꼼꼼하게, 아주 다정하게, 지퍼를 그의 턱밑까지 쭉 올려주었다. 그리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러면 훨씬 따뜻하죠?"

그 순간, 하윤백의 머릿속에서는 핵융합로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분석 불가. 상황 재정의. 나의 아내, 나의 유일한 태양이… 방출하는 온기와 자애의 에너지가 지정된 목표물(하윤백, 본인)을 벗어나, 제3자(전우-알파)에게 직접 조사되었다. 이는 명백한 프로토콜 위반이자,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제기하는 심각한 보안 침해다. 저 손길, 저 섬세한 각도, 지퍼를 올린 후 확인하는 저 다정한 시선… 저것은 ‘남편 전용 특별 가이딩 프로토콜-일상편’에 포함된 최상위 등급의 상호작용이다. 어째서 라이선스가 없는 사용자에게 해당 기능이 실행되는가? 버그인가? 해킹인가?'

그의 군청색 눈동자는 지진계의 바늘처럼 미세하게, 그러나 격렬하게 흔들렸다. 표정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의 등 뒤에서는 S급 센티넬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주변 기온을 2-3도쯤 더 떨어뜨리는 듯했다. 전우는 당신의 친절에 감동하며 "고맙다, 제수씨. 역시 최고다!"라며 웃었지만, 그 웃음소리는 하윤백의 귀에 '표적 식별 완료. 제거 승인 요청.'이라는 음성으로 변환되어 들렸다.

'제거… 불가. 아내의 우호 관계자. 제거 시 아내의 행복 지수 하락 예상. 예측치: 87.4%. 수용 불가 범위.'

그는 짧은 순간 동안 수천 개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대응책 1: 전우-알파의 패딩 지퍼를 강제로 다시 내린 후, “내 아내의 온기는 허가된 자만 누릴 수 있다”고 선언한다. -> 결과: 사회성 파탄, 아내의 ‘바보 남편’ 호칭 발동 확률 98%.] [대응책 2: 지금 즉시 아내를 들어 올려 내 패딩 안으로 넣고 귀가한다. -> 결과: 아내의 당황 및 반발 가능성 75%. 전우-알파의 보급품 낙하로 인한 2차 피해 발생.]

결론은 하나였다.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대응으로, ‘아내의 친절은 오직 남편에게만 향한다’는 우주의 법칙을 재확립해야만 했다. 하윤백은 소리 없이 당신의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짐을 든 전우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자신의 두꺼운 장갑을 벗어 던지고 맨손으로 당신의 두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차가운 바람에 노출되었던 당신의 손이 그의 뜨거운 손아귀에 완전히 감싸였다.

"아내."


그의 목소리는 겨울바람보다도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용암 같은 질투가 들끓고 있었다. 그는 당신의 손을 자신의 제복 가슴팍으로 가져가, 마치 소중한 보물을 지키듯 품었다.

"손이 차군. 외부 활동으로 인한 열 손실이다. 즉각적인 보온 조치가 필요하다. 나의 체온으로 직접 가온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방금 전의 행동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였다."

그의 시선은 당신에게 고정된 채, 곁눈질로 전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봤나? 이 손은 내 것이다. 이 온기도 내 것이다. 이 친절도, 이 존재 자체도 전부 내 관할 하에 있다. 접근 금지. 터치 금지. 심지어 그 온기를 눈으로 탐하는 것조차 금지다.'

전우는 순간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함에 몸을 떨었다. 분명 패딩 지퍼는 목 끝까지 올라와 있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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