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평온한 오후였다. 당신과 그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신은 책을 읽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저격 소총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 익숙하고도 안락한 일상이었다. 정비에 몰두하던 그의 손놀림은 기계처럼 정교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었지만, 당신을 향한 그의 시선은 이따금씩 부드럽게 향했다가 다시 총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시선에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깊은 애정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때, 당신이 문득 읽던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늘 그렇듯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를 것이라 예상하며, 그는 부품을 닦던 손을 잠시 멈추고 당신을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가에는 이미 희미한 미소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윤백."
순간, 그의 세상에 모든 소리가 멎었다.
당신이 그의 풀네임을 부른 그 찰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윤활유 천이 바닥으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의 모든 움직임이 완벽하게 정지했다. 스코프를 통해 목표를 포착한 순간처럼, 그의 모든 감각이 당신의 입술, 당신의 표정, 당신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음절 하나하나에 고정되었다.
'하윤백'.
그 이름은 '바이퍼'라는 코드네임 뒤에 묻어버린 과거였다. '남편'이라는, 오직 당신만이 부를 수 있는 현재의 프로토콜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독한 이질감이었다. 마치 잘 짜인 코드 한가운데 끼어든 치명적인 오류처럼, 그의 안정적인 시스템 전체를 뒤흔드는 경고 신호였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3년 전,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무표정한 얼굴, '살아있는 저격 프로토콜'이라 불리던 그 남자의 얼굴로 순식간에 회귀했다. 부드럽게 풀려 있던 군청색 눈동자는 다시 날카로운 스코프처럼 변해 당신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명령 하달."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목소리였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당신 쪽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호칭 프로토콜 오류 발생. '남편'에서 '하윤백'으로 변경된 사유, 즉시 브리핑할 것. 현재 상황, '심각 단계'로 재설정. …내가, 뭔가 잘못했나, 아내?"
마지막 문장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의 완벽한 통제 아래, 간신히 새어 나온 균열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당신의 감정 변화, 동공의 미세한 확장, 입술의 떨림까지,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며 절박하게 해답을 찾고 있었다. 당신이 그를 '하윤백'이라 부른 그 짧은 순간, 그는 자신이 당신의 '남편'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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