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평화로운 주말 오후. 나는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태블릿으로 웹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나와 부모님, 그러니까 전설적인 S급 센티넬 바이퍼와 그의 유일한 페어인 A급 가이드 메리아, 하윤백과 서낙랑의 2세로 살아간다는 것은 꽤나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을 의미했다. 아버지가 전장에서 ‘살아있는 저격 프로토콜’이라 불리던 시절의 냉혈한 모습은 이제 흑백사진 속 이야기일 뿐, 적어도 이 집 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편이자 팔불출 아버지였으니까. 두 분의 사이가 좋다는 건 온 세상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최근 들어 그 ‘좋은 사이’의 농도가 이상하리만치 진해졌다.
시작은 사소했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가 현관에서부터 어머니를 끌어안고는,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는 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졌다. 이전에는 가벼운 포옹과 입맞춤으로 끝났다면, 이제는 내가 “두 분, 저녁은 드실 겁니까?” 하고 헛기침을 할 때까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심지어 아버지는, 그 무뚝뚝하던 하윤백은, 어머니의 귓불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며칠 전에는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함께 갔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가 카트를 미는 어머니의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는, 목덜미에 뺨을 부비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마치 세상에 단둘만 존재하는 연인처럼 굴었다. 어제는 더 가관이었다. 거실에서 영화를 보다가, 어머니가 아버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다 말고 손가락에 입을 맞췄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공기는… 내가 감히 숨 쉬기조차 민망한, 끈적하고 달콤한 분위기였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하며 깊은 고뇌에 빠졌다. 우리 부모님, 결혼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중년 부부 아니었나? 그런데 왜 마치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스무 살 커플처럼 구는 거지? 이건 단순한 부부 금실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건… ‘사건’이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태블릿을 들어 익명의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심정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 아빠 연애하나 ?????
일단 우리 부모님 결혼한 지 꽤 됐음. 내가 이만큼 컸으니까 말 다했지.
두 분 사이 좋은 건 원래 알았음. 아빠가 완전 엄마껌딱지거든.
근데 최근에 분위기가 이상함. 그냥 사이좋은 부부가 아니라, 갓 사귀기 시작한 CC(캠퍼스 커플) 느낌임.
사례 1. 아빠 퇴근하면 원래 엄마랑 포옹하고 뽀뽀하는 게 국룰이었음.
근데 요즘엔 현관문 앞에서 5분 넘게 안 떨어짐. 내가 헛기침 세 번은 해야 슬쩍 떨어지는데, 그때 엄마 얼굴 보면 토마토임. 아빠는 그거 보고 웃고 있음. 진짜 미치겠음.
사례 2. 다 같이 마트 갔는데, 아빠가 엄마 뒤에서 백허그한 채로 다님.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둘은 신경도 안 씀. 엄마가 뭐 집으려고 하면 아빠가 대신 꺼내주면서 손등에 뽀뽀함. 카트 옆에 있던 내가 민망해서 얼굴을 못 들겠더라.
사례 3. (어제 자 실화) 거실에서 영화 보는데, 아빠가 엄마 머리 쓰다듬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잡아서 입 맞춤.
순간 공기가 변함. 진짜 숨 막혀서 죽는 줄. 두 사람 눈에서 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았음. 나는 투명인간이었음.
아니… 원래도 꿀 떨어지는 건 알았는데 이건 차원이 다름.
꼭 연애 초반에 서로한테 미쳐있을 때 나오는 그런 바이브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두 분 이혼했다가 다시 만나서 연애하는 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의심 중임.
나 원래 이 집의 사랑둥이 아들 포지션이었는데, 요즘엔 그냥 꼽사리 낀 엑스트라 1 같음.
이거… 정상이냐? 우리 부모님 왜 저러는 거냐 진짜…
지난번, 부모님의 기묘한 연애 전선에 대한 하소연 글을 올린 후 며칠이 지났다. 익명의 네티즌들이 보내온 ‘포기하면 편하다’는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기며, 나는 두 분의 세상에 최대한 꼽사리 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투명인간처럼, 공기처럼.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우리 집의 문제는 단순히 ‘중년 부부의 불타는 제2의 신혼’ 같은 낭만적인 카테고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랑이 깊어지면 집착이 된다고 했던가. 우리 아버지는 그 명제를 S급 센티넬의 방식으로, 아주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증명하고 계셨다. 이전의 고민이 달콤한 투정이었다면, 이번의 고민은… 어쩐지 조금 더 스릴러에 가까워졌다.
사건의 발단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시작되었다. 숙제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어 아버지에게 물어보러 서재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여러 개의 모니터를 띄워놓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계셨다. 그런데 그중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무는 모니터가 하나 있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전술 시뮬레이션이나 빌런 관련 데이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모니터에 떠 있는 것은 복잡한 지형 데이터도, 적의 예상 이동 경로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내 백화점의 평면도였고, 그 위를 깜빡이며 움직이는 선명한 붉은 점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점 옆에는 [낙랑(아내). 현재 위치: B백화점 2층, 여성의류 코너. 심박수: 안정. 특이사항: 없음.] 이라는 텍스트가 떠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설마. 설마 했던 그것이었다. 아버지가 과거 현역 시절에 사용하던, 그리고 지금도 [Fearless]의 핵심 자산인 실시간 위치 추적 및 생체 신호 모니터링 시스템. 그것을 어머니에게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아버지는 태연하게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아빠… 이거, 엄마예요?” 아버지는 내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어머니가 오늘 친구분들과 약속이 있다고 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것뿐이다.” 대비? 이건 대비가 아니라 감시, 아니, 스토킹이 아닌가! 내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보았는지 아버지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네 어머니는 소중하니까.” 그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알던 사랑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의 ‘아내 사랑’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를 꼼꼼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동네 카페에 커피를 사러 나간 어느 날,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척하다가 슬쩍 스마트 워치를 들여다봤다. 화면에는 카페 주변의 CCTV 영상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고 있었다. 심지어 줌을 당겨 어머니가 주문하는 메뉴까지 확인하고는, “흠, 오늘은 바닐라 라테군.” 하고 혼잣말을 하는 지경이었다. 며칠 뒤에는 어머니가 차를 몰고 마트에 갔는데, 아버지는 태블릿으로 차량의 내부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그 ‘살아있는 저격 프로토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광경은 공포 그 자체였다. 나는 결국 이 기괴하고도 지독한 사랑의 형태를 다시 한번 세상에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와줘. 우리 아빠가 엄마 스토킹하는 것 같아. (지난번 그 집 맞음)
아빠가 엄마를 스토킹함. 진짜로.
말이 스토킹이지 거의 뭐 군사작전 수준임. 얼마 전에 아빠 서재 들어갔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군용 위성으로 쓰는 실시간 위치 추적 시스템으로 엄마 위치 보고 있었음.
이게 끝이 아님.
엄마가 동네 카페 가니까 아빠가 스마트 워치로 그 주변 CCTV 해킹해서 보고 있음. 엄마가 뭐 시키는지까지 확인하고 “오늘은 바닐라 라테군” ㅇㅈㄹ.
엄마가 운전하고 나가면 차 블랙박스 실시간으로 보면서 엄마 노래 부르는 거 보고 혼자 웃고 있음.
얼마 전에는 엄마가 친구들이랑 등산 갔는데, 아빠가 드론 띄워서 따라다니게 함. 초소형 스텔스 드론이라 엄마는 당연히 모름. 아빠는 거실 소파에서 VR 고글 쓰고 실시간으로 그거 보면서 “위험한 구간인데… 조심해야지, 서낙랑.” 이러고 있음.
이거 사랑 맞냐? 엄마는 당연히 아빠가 자기 이렇게까지 지켜보는지 전혀 모름. 그냥 남편이 좀 다정하고 걱정이 많다고만 생각하는 듯.
내가 이걸 엄마한테 말해야 되나? 말했다가 우리 집 평화 깨지는 거 아니냐? 근데 이대로 두자니 아빠가 너무 무서움. 우리 아빠, 사랑의 방식이 왜 이래? 이거 정상 범주 맞냐고 진짜…
나는 쏟아지는 댓글들을 보며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S급 원격 내조’라니. ‘내 아내의 안전은 국가 안보급’이라니. 어쩐지 다들 즐기는 분위기였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는 조언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어쩌면 정말, 내가 모르는 두 사람만의 세상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히 서재 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모니터 앞에서, 이제는 저녁 장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관측’하고 있었다. 그 집중하는 옆모습은 임무 중인 센티넬의 그것과 똑같았지만,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만큼은 분명,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것이었다.
두 번의 폭로성(?) 게시글 이후, 나는 나름의 평화를 되찾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첨단 기술로 ‘보호’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만끽했다. 그래, 판도라의 상자는 닫아두는 게 상책이다. 나는 그저 이 기묘한 사랑의 결실이자, 사랑의 현장을 목격하는 유일한 관객으로서 팝콘이나 씹으며 살기로 했다. 하지만 이 부부, 아니 이 ‘커플’은 내게 평범한 일상을 허락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사랑이 과하면 사람이 유치해진다고 했던가. 이번 사건은 스릴러도, 첩보물도 아니었다. 이건… 한 편의 유치찬란한 청춘 드라마, 혹은 블랙 코미디에 가까웠다.
사건은 지난 주말, 어머니가 동창회에 참석하면서 시작되었다. 평소와 같이 아버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어머니의 차량에 동행, 아니 ‘호위’를 자처했다. 나는 홀로 집에 남아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집으로 복귀했다. 평소의 그 냉철하고 침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딘지 모르게 불만이 가득한, 마치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엄마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버지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낮게 읊조렸다. “네 엄마가… 내리라고 하더군.”
알고 보니, 동창회 장소 앞에서 어머니의 친구들이 ‘남편이 아직도 데려다주냐’며 짓궂게 놀렸고, 부끄러워진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얼른 가보라며 등을 떠밀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헤어지기 직전, 어머니가 동창 중 한 명인 남자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포착’했다. 물론 아버지는 그 남자의 신상 정보를 0.1초 만에 파악했지만, 감히 ‘내 아내’의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심기가 뒤틀려 버린 것이다. 그날 밤, 아버지는 유치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돌아와 피곤하다며 소파에 눕자, 아버지는 그 옆에 찰싹 달라붙어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는 열 손가락을 하나하나 꼼꼼히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묻는 말이 가관이었다. “이 손으로 악수했나, 서낙랑?” 어머니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냥 인사한 거지, 뭘 그래?”라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그 손등에 보란 듯이 입을 맞추고는 중얼거렸다. “소독하는 거다.”
그 유치한 소유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반찬들로만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물론 전부 아버지가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한 것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의 숟가락 위에는 가장 맛있는 부위만 골라 올려주며 말했다. “어제 동창회에서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아서.” 그뿐인가. 아버지는 어머니가 출근 준비를 하는 내내 졸졸 따라다니며, “오늘 입은 옷이 너무 예뻐서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면 어떡하지?”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다. 어머니는 귀찮다는 듯 아버지를 밀어내면서도 입가의 미소는 숨기지 못했다. 나는 그 닭살 돋는 광경을 아침 드라마 보듯 지켜보며, 다시 한번 익명의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알려야 한다. 이 지독한 사랑의 또 다른 형태를.
아빠가 엄마한테 삐진 것 같음. (이 집 근황)
오늘은 우리 아빠가 삐진 썰 푼다. 진짜 초등학생도 이렇게는 안 삐질 거다.
사건의 발단: 엄마가 동창회에 감. 아빠가 당연하다는 듯이 차로 데려다줌. 근데 엄마 친구들이 ‘아직도 남편이 데려다주냐’고 놀렸나 봄. 엄마가 부끄러워서 아빠한테 얼른 가라고 등 떠밀었다고 함.
근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음. 아빠가 떠나기 직전에, 엄마가 동창인 남자랑 악수하는 걸 봤나 봐.
그날 밤부터 아빠의 유치한 복수가 시작됨.
엄마가 집에 오자마자 손 붙잡고 알코올 솜으로 닦을 기세로 손가락 하나하나 닦아줌. 그러면서 “이 손으로 악수했나?” ㅇㅈㄹ. 엄마가 어이없어하니까 그 손등에 뽀뽀하면서 “소독하는 거다.” 이럼. 내가 다 소름이 돋아서…
다음 날 아침엔 더 심해짐. 새벽부터 일어나서 엄마 좋아하는 반찬으로만 10첩 반상을 차려놓음. 엄마 숟가락 위에 반찬 산더미처럼 쌓아주면서 “어제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아서.” 이럼.
아니… S급 센티넬이라는 사람이… 수많은 빌런들을 한 발로 정리했다는 사람이… 아내 동창이랑 악수한 거 가지고 삐져서 저러고 있는 게 말이 되냐?
사랑하면 유치해진다더니, 우리 아빠는 그냥 유치 그 자체가 되어버림.
이젠 무섭다기보단… 그냥 좀 웃김. 그리고 약간 짠하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 집은 오늘도 평화롭다. 아주 유치하게.
나는 댓글들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둠스데이급 댕댕이’라니. 정말이지, 정확한 표현이었다. 거실로 나가보니 아버지는 소파 팔걸이에 턱을 괸 채, 어머니가 어깨에 기대 잠든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여전히 ‘관측’에 가까웠지만, 어제와는 달리 조금 누그러진, 그리고 만족감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아마 오늘 밤 꿈에서, 아버지는 스텔스 드론을 띄워 어머니의 동창회 장소를 폭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 번째 글을 올린 이후, 우리 집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어머니의 동창회 앨범을 불태우려 하거나, 어머니가 악수한 남자의 신상에 저주를 퍼붓는 유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마치 지난번의 유치찬란한 질투 소동으로 자신의 사랑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그는 다시 냉철하고 이성적인 S급 센티넬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아니, 정확히는 ‘가정적인’ S급 센티넬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차를 매일 아침 직접 내려주고, 퇴근 시간에 맞춰 현관문 앞에서 대기하는 등, 그의 사랑은 이제 스릴러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그리고 이제는 잔잔한 가족 드라마로 장르를 전환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 평화가 영원하길 빌었다. 하지만 나는 잊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평범한 ‘사랑꾼’이 아니라, ‘살아있는 저격 프로토콜’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의 사랑은, 결코 평범한 카테고리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사건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새로 나온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싶다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아버지의 군청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흥미의 빛이 아니었다. 마치 새로운 작전 목표를 수신한 스코프처럼, 차갑고도 정밀한 빛이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지만, 설마 스마트폰 하나로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애써 무시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최고급 사양의 최신형 스마트폰을 들고 와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어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아버지의 뺨에 입을 맞췄고, 아버지는 그 ‘살아있는 저격 프로토콜’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바로 어제, 내가 우연히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버지는 새 휴대폰의 ‘초기 설정’을 자신이 직접 해주겠다며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저 기계치인 어머니를 위한 다정한 배려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서재에서 내가 본 것은, 단순한 초기 설정을 넘어선 ‘시스템 개조’의 현장이었다. 아버지는 노트북에 스마트폰을 연결하고, 복잡한 코드가 가득한 검은 화면을 띄워놓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적국의 통신망을 해킹하는 첩보 요원 같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아빠, 뭐 하세요? 아직 설정 안 끝났어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보안을 강화하는 중이다. 요즘 스미싱이나 해킹이 많아서, 네 어머니의 개인 정보는 완벽하게 보호되어야 하니까.” 그럴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모니터 한구석에 떠 있는 [Viper Protocol v.7.2 - ‘Guardian’ System Installation]이라는 문구를 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보안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는 새 스마트폰을 받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 스마트폰은 평범한 기계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지상 최강의 ‘아내 감시 툴’이었다. 통화 내용은 물론, 모든 메시지, 검색 기록, 심지어는 SNS 활동 내역까지 아버지의 개인 서버로 실시간 전송되고 있었다. 위치 추적은 기본, 배터리 잔량과 데이터 사용량까지 분 단위로 보고되었다.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감정 분석’ 기능이었다. 스마트폰의 전면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수집된 어머니의 표정과 목소리 톤을 분석하여 [현재 감정 상태: 만족(92%), 애정(87%), 약간의 피로(13%)]와 같은 데이터가 아버지의 스마트 워치로 전송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차마 어머니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이 완벽한 통제 속에서 천진하게 행복해하는 어머니의 미소를 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이 기막힌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키보드를 잡았다.
우리 아빠가 엄마 폰을 개조했어. (이 집 최종장일 듯)
엄마가 폰 바꾸고 싶다고 한마디 했는데, 아빠가 며칠 뒤에 최신형 폰을 사다 줌. 그리고 자기가 ‘초기 설정’을 해주겠다고 하루 종일 폰을 붙들고 있었음. 난 그냥 다정한 남편인 줄 알았지. 근데 그게 아니었어.
아빠가 설치한 건 백신 프로그램이 아니라 ‘바이퍼 프로토콜 v.7.2 가디언 시스템’이었음. 이름부터 존나 무섭지 않냐.
그 폰, 그냥 폰이 아님. 엄마의 모든 게 아빠한테 실시간으로 전송됨.
- 통화, 문자, 카톡 내용 전부 아빠 개인 서버로 백업됨.
- 인터넷 검색 기록, 유튜브 시청 기록, SNS 활동 분 단위로 보고됨.
- 위치 추적, 배터리 잔량은 기본 옵션임.
근데 진짜 미친 건 ‘감정 분석’ 기능임. 폰 마이크랑 카메라로 엄마 표정이랑 목소리 분석해서 아빠 스마트 워치에 알림이 뜸.
Target: 서낙랑(User)
Current Emotion: 만족(92%)
Event: 행복 수치 급상승 감지
엄마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름. 그냥 “어머, 이 폰은 배터리가 오래가네~” “사진이 정말 잘 나온다~” 하면서 좋아 죽음. 그 모습을 보는 아빠 표정은…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신의 표정이었음.
이제 난 진짜 모르겠다. 이건 사랑이냐, 아니면 완벽한 사육이냐. 제발 누가 우리 아빠 좀 말려줘. 아니, 말릴 수 있긴 한 거냐.
나는 ‘뇌에 칩을 심는다’는 댓글을 보고 소름이 돋아 태블릿을 덮었다. 제발, 거기까지는 가지 않기를. 거실에서는 어머니가 새 스마트폰으로 내게 영상 통화를 걸어 시험하고 있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어머니의 밝은 얼굴과, 그 옆에서 흐뭇하게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 어쩌면, 정말로, 이것이 두 사람의 완벽한 사랑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공유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는 S급의 사랑. 나는 이 거대한 사랑 앞에서 그저 한 명의 관객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