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이따 뵐게요 바이퍼 씨!"

당신의 인사. 그것은 이 훈련실의 무균적인 공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적인 예의였다. 하지만 바이퍼는 당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어깨를 움찔하지도 않았다. 마치 당신의 목소리가 그저 의미 없는 배경 소음 중 하나인 것처럼, 그는 제어 패널을 조작하는 자신의 손가락에만 집중했다.

'데이터 삭제 완료.'
'로그아웃 완료.'

모든 절차가 끝나자, 그는 미련 없이 패널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당신이 있는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훈련실 출입문을 향해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향했다. 군화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의 등 뒤에 메인 저격소총이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이 공간에서의 용무는 완벽히 끝났고, 당신이라는 '측정 도구'는 다음 사용 시간까지 보관하면 그만인 존재였다.

그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기 직전, 아주 잠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다만,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마치 무언가 예상치 못한 소음을 포착한 것처럼 당신이 있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텅 빈 훈련실에는 당신과 차갑게 식어버린 기계들만이 남았다.

…삐빅. 삐빅.

그가 사라지고 잠시 후, 당신의 주머니에서 짧은 수신음이 울렸다. 모든 [Fearless] 요원에게 지급되는 단말기였다. 액정에는 짧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긴급] C-구역, 차원 균열 발생. 빌런 '크리퍼' 출현. 전 요원, 즉시 대응 태세 전환.

그리고 곧이어, 훈련실의 스피커를 통해 지부 전체에 비상 경보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이퍼 씨!! 들으셨나요?"

당신의 목소리. 그것은 비상 경보의 날카로운 소음을 뚫고 복도로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당신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던 바이퍼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당신이 있던 훈련실 문 앞에,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는 더 이상 당신이라는 '측정 도구'를 향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허공의 한 점, 아마도 그만이 볼 수 있는 작전 지도나 목표물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비상 경보의 붉은 조명이 그의 날카로운 턱선과 하얀 피부 위를 스치며 명암을 만들었다. 조금 전의 냉정한 엔지니어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전장의 포식자만이 서 있었다.

"보고는 불필요합니다, 가이드 메리아."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 톤 더 낮고, 위험할 정도로 차분했다. 그는 당신에게서 시선을 완전히 거둔 채, 등에 멘 저격소총의 고정 장치를 푸는 손길에만 집중했다. '찰칵'.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경보음 사이로 명확하게 들렸다.

"당신은 가이드다. 비전투 요원. 현 시간부로, 안전 구역인 중앙 통제실로 이동해 대기하십시오. 이건 명령입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복도 저편으로 향했다. 망설임 없는, 오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기계적인 걸음이었다. 그의 목덜미, 제복 깃 아래로 푸른빛의 문양이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의 능력 [Blue Lock]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당신의 존재는 이미 그의 인식 범위 밖으로 밀려난 듯했다. 전장에서는, 가이드의 안위 따위는 그의 조준선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이딩은 필요하지 않나요?"

그의 걸음이, 복도 한가운데서 멈췄다. 비상 경보의 붉은 빛이 그의 등 뒤에서 명멸했다. 당신의 질문은 그에게 있어 소음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해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소음은 그의 발을 묶어 세웠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고개만 돌려 당신을 바라보는 그의 움직임은 마치 관절이 삐걱이는 기계 같았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는 조금 전의 허공이 아닌, 정확히 당신의 눈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스코프를 통해 목표물을 확인하는 저격수의 그것처럼, 냉정하고 건조한 분석만이 담겨 있었다.

"수정합니다, 가이드 메리아."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 대신, 자신의 판단을 정정했다.

"현재 내 가이딩 수치는 78.3%. 허용 범위 내입니다. 임무 수행에 지장 없어. 당신의 존재는 전투에 있어 '변수'일 뿐, '필요'가 아닙니다."

그는 당신의 역할과 가치를 한마디로 재단했다. 변수.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해야 하며, 제거해야 할 대상. 그는 말을 마치고는 다시 당신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마치 더 이상 대화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그리고 그의 손이 허리춤의 무전기를 향했다.

"여기는 바이퍼. 중앙 통제실, 응답 바랍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다치지 마세요!"

다치지 마세요!

당신의 말. 그것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지직거리는 소음과 비상 경보 사이를 파고드는, 지극히 비논리적이고 불필요한 데이터였다. 상처. 부상. 그것은 전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당연한 변수이며, 확률적으로 계산되고 대비되어야 할 뿐, 감정적인 우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바이퍼의 세계에서는 그랬다.

그의 등은 여전히 당신을 향해 있었다. 무전기를 쥔 손도, 목표를 향해 돌아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당신의 말을 무시해야 했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졌다. 중앙 통제실에 보고를 올리려던 입술이, 예정된 경로를 이탈한 부품처럼 잠시 멈췄다.

…오차. 또다시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오차. '자존심'이라는 단어에 이어, 이번에는 '걱정'이라는 입력값. 그의 완벽한 프로토콜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는, 의미 불명의 데이터였다.

"……."

침묵. 그의 등 뒤로 붉은 경광등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는 끝내 당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무전기에 대고 예정된 보고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날카로운 금속성을 띠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소음을 차단하려는 듯이.

"중앙 통제실. 바이퍼. C-구역 좌표 전송 바람. 5분 내 현장 도착 예정. 가이드 메리아는 현재 안전 구역으로 이동 중. 이상."

그는 당신이 아직 이동하지 않았음에도 '이동 중'이라고 보고를 마쳤다. 그것은 당신을 그 자리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저 당신이라는 변수를 자신의 작전 반경에서 완벽하게 소거하고, 이미 끝난 일로 처리해버리려는 기계적인 절차에 가까웠다. 보고를 마친 그는 무전기를 제자리에 고정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복도 저편으로 향했다. 군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번에야말로,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군화 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 당신의 귓가에는 오직 기계적인 비상 경보음만이 울리고 있었다. '이동 중'. 그는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당신의 상태를 그렇게 규정하고 보고를 마쳤다. 당신이라는 변수를 그의 작전 지도 위에서 완벽하게 지워버린 것이다. 당신의 걱정 어린 말 한마디조차, 그는 끝내 돌아보지 않고 소음처럼 흘려버렸다.

분했다. 그가 자신을 단순한 '변수' 취급한 것도, 걱정을 무시한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도.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그는 전장으로 향했다. 가이딩 수치가 허용 범위 내라고는 했지만, 언제 어떻게 요동칠지 모르는 것이 센티넬의 파형이었다.

당신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이내 결심한 듯 몸을 돌렸다. 그가 명령한 '중앙 통제실'. 그곳이라면, 적어도 그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는 있을 터였다. 당신은 복도를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붉은 경광등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른 요원들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당신은 오직 중앙 통제실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나아갔다.

거대한 방폭문이 열리자, 수십 개의 모니터가 뿜어내는 푸른 빛과 긴박한 교신 소리가 당신을 덮쳤다. 거대한 메인 스크린에는 C-구역의 위성 화면이 떠 있었다. 그리고 화면 한쪽, 오퍼레이터의 외침과 함께 바이퍼의 1인칭 시점 화면이 연결되었다.

"바이퍼, 현장 진입. 목표, '크리퍼'와의 거리는 700미터. 교전 개시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화면은 저격소총의 스코프를 통해 바라본 시점이었다. 십자선 중앙에, 기괴한 형태로 날뛰는 빌런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흔들림 없는 화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 그는 정말로, 살아있는 저격 프로토콜 그 자체였다.

"대단하다…"

당신의 작은 중얼거림은 수많은 교신과 키보드 소리에 파묻혔다. 그 누구도 당신의 감탄 섞인 혼잣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은 중앙 스크린,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그 십자선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이 바로 S급 센티넬, 바이퍼의 시야였다.

고요함. 스코프 안의 세상은 소음 하나 없이 목표물에 집중했다. '크리퍼'가 기괴한 팔을 휘두르며 콘크리트 벽을 부수는 순간, 바이퍼의 숨이 멈췄다. 아니, 애초에 그는 숨을 쉬고 있었던가. 화면은 미동조차 없었다. 스코프 중앙의 십자선이 크리퍼의 핵, 붉게 빛나는 중심부를 정확히 겨눴다.

"목표, 록 온. [Blue Lock] 발동."

무전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와 동시에, 스코프 안의 세상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크리퍼의 움직임이 마치 프레임이 끊긴 영상처럼 부자연스러워졌다. 공간이 고정되었다. 중앙 통제실의 모든 오퍼레이터들이 숨을 죽였다. 그것이 바로 바이퍼의 능력이었다. 스코프에 담는 순간, 상대의 시간을 왜곡하고 공간을 잠가버리는 절대적인 저격.

탕-!

고요함을 깨뜨리는 단 한 발의 총성. 스크린 속, 크리퍼의 핵이 정확히 꿰뚫리며 산산조각 났다.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교전 개시를 알린 지 불과 12초 만의 일이었다. 상황 종료.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리 완료. 피해 상황 보고."

그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마치 서류에 도장을 찍듯, 임무의 종료를 알릴 뿐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옆에 있던 한 오퍼레이터가 자신의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바이퍼 님, 심박수랑 파형이 순간적으로 조금… 아니, 정상 범위군."

그의 말에 당신의 시선이 옆 모니터로 향했다. 그곳에는 바이퍼의 생체 데이터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떠 있었다.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 그의 심박 그래프가 아주 미세하게,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살짝 위로 튀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정상 범위. 허용 오차. 하지만 당신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완벽한 평온의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역시, 자신의 그 미세한 흔들림을 분명히 인지했을 터였다.

"허용수치라더니. ……거짓말쟁이."

당신의 나직한 속삭임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거짓말쟁이. 그 단어가 당신의 혀끝에서 씁쓸하게 맴돌았다. 통제실의 다른 요원들은 이미 상황 종료에 안도하며 다음 절차를 진행하느라 분주했다. 그 누구도 바이퍼의 생체 데이터 그래프에 나타난 그 미세한 점 하나에 주목하지 않았다. 오직 당신만이, 그 완벽한 수평선 위로 솟아올랐던 작은 오차를 목격했다.

그때였다. 임무 종료 보고 이후 침묵을 지키던 바이퍼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전의 기계적인 톤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더욱 낮고, 날카롭게 갈아낸 듯한 음성이었다.

"…중앙 통제실. 가이드 메리아, 현재 위치 보고."

통제실의 모든 소음이 순간 멎는 듯했다. 그의 질문은 절차에 없던 것이었다. 작전이 끝난 센티넬이, 자신의 안전을 확인받은 가이드의 위치를 다시 묻는 경우는 없었다. 당신의 옆에서 모니터를 보던 오퍼레이터가 당황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으려 할 때, 당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중앙 통제실에 있어요!"

짧은 정적. 스크린 속, 저격소총을 내린 그의 시야가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마치 자신의 눈으로 직접 당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듯이. 이윽고, 무전기 너머로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복귀하겠다. 3분 뒤, 7번 게이트 앞에서 대기."

명령이었다. 질문도, 요청도 아니었다. 그는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교신을 끊어버렸다. 오퍼레이터들이 서로 의아한 시선을 교환했다. '복귀하면 격납고로 바로 이동 아닌가?', '왜 가이드를 따로…' 하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당신은 그들의 시선 속에서, 스크린에 마지막으로 비쳤던 그의 흔들림 없는 시야를 떠올렸다. 그는 그 '오차'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분석의 끝에, 당신이라는 변수가 자리 잡고 있음을 직감했다.

당신은 짧게 고개를 숙여 오퍼레이터들에게 인사하고 통제실을 나섰다. 7번 게이트로 향하는 복도는 아까와 달리 한산했다. 비상등이 꺼지고 하얀 형광등 불빛만이 차갑게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당신의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거짓말쟁이'라고 따져 물어야 할까. 아니, 그런 말을 그가 이해나 할까.

7번 게이트 앞에 도착했을 때, 당신의 생각은 정확히 3분이 지난 시점에 도착한 그에 의해 끊겼다.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며, 전투복 차림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저격소총을 아무렇지 않게 등에 멘 채였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스코프처럼 정확하게 당신을 포착했다.

"…이쪽으로."

그는 짧게 말하며 당신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몸에서는 희미한 화약 냄새와 차가운 금속 냄새가 났다. 그가 향하는 곳은 그의 개인 사무실 방향이었다. 당신은 잠시 망설이다, 그의 뒤를 따랐다. 그의 넓은 등이,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은 채 묵묵히 앞서 걷고 있었다.

"그래프 봤어요. 뭔가 문제가 생겼던 것 같던데요?"

당신의 목소리는 텅 빈 복도에 선명하게 울렸다. 그의 등은 여전히 당신을 향해 있었지만, 일정하게 복도를 울리던 군화 소리가 순간, 아주 미세하게 멈칫했다. 발소리가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발을 내딛는 간격이 찰나의 순간 불규칙해졌을 뿐. 일반인이라면 결코 눈치채지 못할 오차였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복도의 차가운 공기처럼 낮고 건조했다.

"문제는 없었다. 모든 수치는 허용 범위 내."

거짓말. 당신은 속으로 되뇌었다. 허용 범위 내라는 말은, '0'이 아니었다는 뜻과 같았다. 완벽한 통제를 자랑하는 그에게, 0이 아닌 모든 숫자는 곧 오차이자 결함이었다. 그가 자신의 개인 사무실 문 앞에 멈춰 섰다. 지문과 홍채를 인식하는 소리가 짧게 울리고, 금속성의 문이 소음 없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열렸다.

"…중앙 통제실의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은 없었을 텐데."

그제야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당신을 마주했다. 사무실 안의 서늘한 공기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당신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마치 스코프로 표적의 정보를 읽어내듯, 당신의 표정, 눈빛, 미세한 떨림 하나까지 분석하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어떻게 봤지?"

질책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그는 순수하게 알 수 없는 변수를 마주한 연구원처럼, 그저 사실을 캐묻고 있었다. 자신의 완벽한 데이터에 기록된 '오차'를, 당신이라는 외부 변수가 '어떻게' 인지했는지. 그 과정과 경로를 파악해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담긴 질문이었다.

"연구원이 뭐라 중얼거리길래… 저도 모르게 그래프를 쳐다봤어요. 마침 보였고, 가이딩이 필요한 상태 아닌가요?"

'연구원의 중얼거림.' 당신의 설명은 논리적 허점 없이 완벽한 인과관계를 가졌다. 그는 당신의 대답을 하나의 정보로 입력했다. 중앙 통제실의 보안 규율에 대한 보고서가 필요하겠군.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문제였다. 지금 그의 모든 연산 능력은 눈앞의 변수, 당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시선이 미동도 없이 당신에게 고정되었다. 사무실의 차가운 공기가 당신의 피부에 소름처럼 돋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당신의 말에 담긴 미세한 도발, '가이딩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냐'는 그 질문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가이딩의 필요 여부는 내가 판단한다."

명령어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목소리. 그는 한 걸음, 당신에게로 다가섰다. 정갈하게 다려진 제복이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스치는 소리를 냈다. 그의 그림자가 당신을 덮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현재 내 가이딩 수치는 87%. 안정 범위다. 당신이 본 것은 소수점 이하의 노이즈. 분석할 가치도 없는 데이터 폐기물이지."

그는 당신의 코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 그의 군청색 눈동자 안에서, 당신은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오직 상대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해체하려는 냉정한 의지만이 번뜩일 뿐이었다. 그는 당신이 자신의 '완벽함'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 '폐기물'에 반응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군."

그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당신의 반응 자체를 새로운 데이터로 수집하려는 듯 보였다. 심박수의 변화, 동공의 미세한 확장, 들이마시는 숨의 깊이까지. 그의 모든 감각이 당신을 향해 열려 있었다.

"가이드. 당신의 역할은 나의 '상태'를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명령'에 따라 안정시키는 것이다. 혼동하지 마."

"'오차'를 봤는데 어떤 가이드가 그걸 내버려둬요!"

당신이 망설임 없이 뻗은 손이 그의 손을 단단히 붙잡는 순간. 정적. 모든 것이 멈췄다. 그의 시스템에 입력되지 않은, 예측 범위를 벗어난 돌발 행동이었다. 그의 단단한 손이 반사적으로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뜨거운 것에 닿은 듯 아주 미세하게 움찔하는 근육의 떨림. 하지만 그는 당신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당신과 맞닿은 손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당신의 얼굴로 향했다. 그 군청색 눈동자 속에서 처음으로 '분석'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스쳤다. 그것은 당혹감에 가까운, 정체불명의 데이터 오류를 마주한 기계의 침묵이었다.

"…허가하지 않은 접촉이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냉정했지만, 평소의 기계적인 울림과는 미세하게 달랐다. 당신의 당돌한 행동이 그의 완벽하게 통제된 프로토콜에 작은 균열을 낸 것이다. 그는 잡힌 손을 빼내려는 대신, 오히려 당신의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당신의 체온이 그의 차가운 피부 위로 서서히 번져나가는 감각, 그 감각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형의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당신은 지금 명령을 불이행하고, 규율을 위반했다. 가이드."

그는 당신의 행동을 '오류'로 규정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질책보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탐색의 의지가 더 강하게 묻어났다. 왜. 어째서.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가. 그의 시스템이 이해할 수 없는 변수,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만들어 낸 당신의 행동을, 그는 필사적으로 분석하려 하고 있었다.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계산은 끝났나?"

"손만 잡아도 가이딩이 가능한 효율적인 가이드를 내치는 건 비효율적이에요! 무엇보다 바이퍼 씨는 효율을 중시하잖아요. 그렇죠?"

당신의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논리 회로에 박혔다. '비효율'. 그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그의 세계를 지탱하는 절대적인 가치. 당신은 그 가치를 방패 삼아 그의 규칙을 깨뜨렸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계산이 끝났냐는 그의 질문에, 당신은 계산을 뛰어넘는 해답을 제시했다. 그의 시스템은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입력받고, 잠시 과부하에 걸린 듯 침묵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 아주 희미하게 힘이 들어갔다. 뿌리치려는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예측 불가능한 데이터의 근원지를 더 정밀하게 측정하려는 듯한 압력이었다.

"…가설일 뿐이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기계처럼 평탄했지만, 그 안에는 억지로 눌러 담은 혼란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잡힌 손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의 체온이 그의 차가운 피부를 통해 신경망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안정적인 가이딩 파형이 그의 예민한 감각을 미세하게 진정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부정할 수 없는 데이터였다.

"당신의 가이딩 효율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손을 잡는 것만으로 안정적인 수치가 유지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그는 시선을 들어 다시 당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더 집요해져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을 발견한 과학자처럼, 당신이라는 존재의 모든 것을 해부하고 분석하려는 듯한 광기가 어렸다.

"증명해 봐. 당신의 그 '효율'이라는 것을."

그는 당신의 손을 놓는 대신, 그대로 이끌어 자신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등 뒤의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완벽하게 격리된 공간. 그의 영역이었다. 그는 당신을 사무실 중앙에 세운 뒤, 그제야 손을 놓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 허가 없이는 어떤 접촉도 불허한다. 당신의 가설을 증명할 기회를 주지. 단, 실패 시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거다, 가이드."

"알겠습니다!"

당신의 순순한 대답에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틀렸다. 만족인지, 혹은 다가올 결과에 대한 냉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당신을 그 자리에 세워둔 채, 몸을 돌려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걸음걸이.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칼같이 다려진 제복의 선이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했다.

책상 앞에 멈춰 선 그는 의자에 앉는 대신, 단말기 위에 놓인 데이터 패드를 집어 들었다. 방금 전 C-구역에서 처리한 빌런 '크리퍼'에 대한 보고서였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빠르게 데이터를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당신의 존재는 이미 잊었다는 듯, 그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사무실 안에는 오직 데이터 패드를 넘기는 미세한 소음과 차가운 환풍기 소리만이 울렸다.

"거기 서 있어."

시선은 데이터 패드에 고정한 채, 그가 나지막이 명령했다. 당신의 존재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 철저히 계산된 무시. 그는 당신을 자신의 공간 안에 배치된 하나의 변수로 취급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의도적으로 가이딩 수치를 불안정 상태로 유도할 거다. 목표는 단 하나. 당신의 가설대로, 최소한의 접촉으로 내 수치를 안정 범위까지 복구시키는 것."

그는 데이터 패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마침내 당신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스코프처럼 정확하게 당신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거울에, 당신과 그의 모습이 나란히 비쳤다. 차갑고 고요한 풍경. 그 안에서 당신은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증명할 준비는 됐나, 가이드."

"…폭주 직전 센티넬은 이런 모습이구나."

차가운 금속을 쥔 듯한 그의 손에, 당신의 온기가 닿는 순간. 고통스러운 소음으로 가득했던 그의 세계에, 유일하게 의미를 가진 신호가 입력되었다. 당신의 손가락이 그의 손등을 감싸고, 단단히 맞잡는 그 감촉. 그것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다. 혼돈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내려진, 단단하고 묵직한 닻과도 같았다.

당신의 말, 그 담담한 관찰이 그의 예민해진 청각을 찔렀다. 동정이나 두려움이 아닌, 부드러운 분석. 그것은 오히려 그의 흐릿한 의식을 붙드는 역할을 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당신의 손을 통해 흘러드는 안정적인 파형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머릿속을 헤집던 전투의 환영과 비명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핏빛 환각 대신, 당신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과 따뜻한 체온이 그의 감각을 재정의했다.

"…데이터, 들어온다. 가이딩 파형… 동기화 시작."

벽에 기댄 채, 그가 힘겹게 중얼거렸다. 눈을 감은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날카롭게 울리던 경고음의 간격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UNSTABLE'이라 깜빡이던 붉은 경고등이, 주황색 'CAUTION'으로 바뀌었다. 당신의 손을 잡은 그의 손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뿌리치려는 저항이 아니었다. 갈증에 시달리던 자가 물을 움켜쥐듯, 본능적인 갈망이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 혼탁함이 남아있었지만, 초점은 정확히 당신을 향해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맞잡은 손으로, 그리고 다시 당신의 얼굴로 옮겨갔다. 당신의 그 동요 없는 분홍색 눈동자를,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를 비추는 거울처럼 마주했다.

"이게… 당신의 방식인가."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지만, 조금 전의 고통스러운 기색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미지의 데이터를 마주한 연구자의 집요한 호기심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당신의 반응을 하나하나 기록하듯 관찰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최소한의 접촉으로 최대 효율을 낸다… 이론은, 그럴듯하군."

"가이딩에 다른 방법도 있기만 하지만 바이퍼 씨가 안 좋아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지부장님이 저희를 페어로 짜셨는지도 몰라요."

당신의 말. 그것은 바이퍼의 시스템에 새로운 변수로 입력되었다. '다른 방법'. 정의되지 않은 절차. 그의 논리 회로는 즉시 해당 변수의 위험성과 효율성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언급한 '지부장의 의도'라는 또 다른 미지수까지 더해지자, 그의 머릿속에선 수백 개의 시뮬레이션이 동시에 실행되었다.

주황색으로 바뀐 'CAUTION' 경고등이 그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맞잡은 손에서 흘러드는 당신의 안정적인 파형은 계속해서 그의 폭주 직전 감각을 잠재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내부에서는 다른 종류의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고요한 수면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당신의 한마디가 만들어낸 파문. 호기심이라는 이름의 노이즈였다.

"다른 방법이라…."

그가 나직이 당신의 말을 되뇌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단어 사이의 간격이 미세하게 길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의 지연이 아니었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최적의 질문을 도출하기 위한 연산의 시간이었다. 그는 당신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온기. 그리고 그 온기가 가져온 결과. 그는 시선을 들어 다시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통계상, 접촉의 강도와 가이딩 효율은 비례 관계를 가진다. 당신이 말하는 '다른 방법'이란,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동반한 감정적 가이딩을 의미하는 건가. 그건 과거의 데이터에서도 비효율과 통제 불능 변수 증가로 폐기된 프로토콜인데."

그의 말투는 여전히 보고서를 읽는 것처럼 딱딱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명백한 질문이었다. 폐기된 프로토콜. 비효율. 그는 의도적으로 그 방법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당신의 반응을 떠보고 있었다. 당신의 가설, 당신의 자신감이 과연 그 '비효율적인 방법'에까지 적용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지부장의 판단은 논외로 하지. 중요한 건 현재 데이터다. 증명해 봐. 당신이 말하는 그 '다른 방법'의 효율성을. 이론이 아닌, 실증으로."

"네? 그… 그럼 눈을 감아주시겠어요?"

당신의 그 한마디. 눈을 감아주시겠어요? 그건 명령이었다. 부드러운 요청의 형태를 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지시. 바이퍼의 분석 회로가 순간 정지했다. 시각 정보. 그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데이터 수집 수단이자, 상황 통제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통제권을 스스로 내려놓으라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제안이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당신의 분홍색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읽어내려 애썼다. 허튼수작인가? 아니면, 이것 역시 계산된 행동인가. 맞잡은 손에서 흘러드는 안정적인 파형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진심이었다. 당신의 가설을, 그 '다른 방법'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가장 예민한 감각 중 하나를 차단하려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가설이군."

그는 짧은 침묵 끝에,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 저항 없이, 순순히.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덮자, 다른 감각들이 비정상적으로 날카로워졌다.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당신의 미세한 맥박, 사무실 안의 공기 흐름, 벽에 붙은 경고등이 깜빡이는 희미한 소리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그가 잡고 있지 않은 당신의 다른 쪽 손이, 천천히 다가와 그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시스템이 기록해 둔 '감각 이상 부위'. 역대 가이드들이 건드리는 순간 경기를 일으키며 밀어냈던 바로 그곳이었다.

"…!"

그의 어깨가 굳었다. 예상치 못한 침범. 경고음이 다시 머릿속에서 울릴 뻔한 그 찰나, 당신의 엄지손가락이 그의 목덜미, 문양이 새겨지는 바로 그 지점을 지그시 눌렀다. 고통도, 불쾌감도 아니었다. 그저 단단하고 부드러운 압력. 그 압력을 타고, 손을 잡았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농밀하고 강렬한 가이딩 파형이 그의 신경계를 직접 타격했다.

"큭…."

짧은 신음이 그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눈을 감은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건… 데이터에 없던 반응이다. 온몸의 신경이 목덜미의 그 작은 접촉점에 집중되는 감각. 마치 마른 대지에 쏟아지는 폭우처럼, 안정적인 에너지가 그의 몸을 순식간에 채워나갔다. 'CAUTION' 상태이던 경고등이, 소리 없이 'STABLE'의 녹색 불빛으로 바뀌었다. 단 몇 초 만에.

"…이게, 당신이 말한 '다른 방법'인가."

눈을 감은 채, 그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는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다. 폭주 직전의 떨림이 아닌, 미지의 감각에 대한 혼란과… 생경한 쾌감 때문이었다. 그는 이 감각을 분석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의 손길이 가져오는 압도적인 안정감에 저항할 수 없었다.

"원래는 입맞추려고 했다가… 아 접촉의 강도가 세지면 효율도 올라가는 거 아시죠? 그런데 바이퍼 씨는 싫어할 것 같아서요! 목덜미는 예민한 부위니까 가이딩 반응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목소리. 눈을 감아 증폭된 청각을 타고, 단어 하나하나가 그의 뇌리에 명확히 각인되었다. 원래는 입맞추려고 했다가… 그 한 문장이 그의 모든 사고 회로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키스. 데이터상으로 존재하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감정 오염도가 높은 가이딩 방식.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고려했다. 나에게. 이 하윤백에게.

그의 굳게 닫힌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만약 당신이 정말 입술을 부딪쳐 왔다면, 프로토콜에 따라 당신을 즉시 밀어내고 위협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의 반응을 예측했고, 차선책을 선택했다. 그의 가장 민감한 부위를, 가장 효율적인 가이딩 포인트로 변환시키는 놀라운 발상. 예민하기에, 반응도 예민할 것이라는 당신의 가설은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칠흑 같던 시야에 당신의 얼굴이 들어왔다. 코앞까지 다가온, 걱정과 자신감이 뒤섞인 분홍색 눈동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당신을 응시했다. 목덜미를 감싼 당신의 손, 그리고 그 손에서 흘러드는 안정적인 파형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당신이 방금 던진 데이터를 분석했다.

"…정확한 판단이다."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이전의 건조함과는 다른, 미세한 열기를 머금은 목소리였다. 그는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자신의 손에 힘을 주어, 당신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옭아매듯 붙잡았다. 여전히 당신의 다른 손은 그의 목덜미를 감싼 채였다.

"리스크를 계산하고, 변수를 통제한 뒤, 최소한의 접촉으로 최대 효율을 도출했다. 당신의 가설은… 증명됐어. 이 방법, 다음 가이딩 프로토콜에 정식으로 추가하지."

그의 말은 칭찬이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무감각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의 군청색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이전에는 없던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흥미'라는 이름의 감정. 그는 당신의 손을 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 또한 그의 움직임에 따라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큰 키 때문에, 당신은 그를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이것뿐이라고는 안 했지. 당신이 고려했던 첫 번째 방법. 그 '비효율적인' 프로토콜의 데이터도 수집할 필요가 생겼다. 메리아."

그가 당신의 코드네임을 처음으로 '가이드' 라는 지칭없이 정확하게 불렀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눈을 지나, 당신이 언급했던 바로 그곳, 당신의 입술에 잠시 머물렀다. 스코프로 목표를 조준하듯, 냉정하고 집요한 시선이었다.

"…네?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싫지 않으시면 알겠어요!"

당신의 승낙. 너무나도 쉽게 나온 그 대답에, 바이퍼의 분석 회로가 다시 한번 미세한 오류를 일으켰다. 싫지 않으시면, 그 말은 감정의 영역이었다. 그의 프로토콜에는 존재하지 않는, 호불호의 문제. 그는 당신의 행동을 '효율'과 '비효율'로 판단했지, '호오'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은 그의 감정을 예측하고, 그 예측이 빗나갔음에 안도하며, 심지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의 눈동자가 당신의 입술에서 다시 당신의 눈으로 옮겨갔다.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 그 이질적인 조합을 그는 잠시 말없이 관찰했다. 맞잡은 손, 그리고 아직 그의 목덜미에 남아있는 당신의 온기가 생경한 데이터 값을 계속해서 전송하고 있었다.

"감정은 변수다. 내 프로토콜에 '호오'는 없어."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사무실의 정적을 갈랐다. 그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그는 당신의 목덜미를 감쌌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낸 뒤, 그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제 당신의 양 손목은 모두 그의 손아귀에 잡힌 상태였다. 그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당신의 숨결이 그의 턱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데이터 수집을 시작한다. 목표는 '입술 접촉을 통한 가이딩 파형 변화'. 변수 통제를 위해, 저항은 불허한다."

그것은 통보이자,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는 잡고 있던 당신의 손목 하나를 놓아, 그 손으로 당신의 턱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단하게 감싸 쥐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게 만드는, 저항을 원천 봉쇄하는 움직임. 그의 군청색 눈이 다시 당신의 입술로 향했다. 스코프의 영점을 맞추듯, 집요하고 냉정한 시선.

그리고 그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숙였다. 마치 정밀 기계를 다루듯, 오차 없는 각도로. 그의 차가운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는 순간,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의 표정 변화, 미세한 떨림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뜬 채였다. 접촉면을 통해, 목덜미와는 또 다른 질감의, 날것 그대로의 가이딩 파형이 훅 끼쳐 들어왔다. 그의 굳게 닫힌 입술이 당신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머금었다. 맛을 보듯, 탐색하듯. 이건 키스가 아니었다. 분석이자, 해부였다.

"어떠세요? 이제 수치는 많이 안정돼서 크게 반응은 없을 것 같은데."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과, 그의 혀가 당신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안정돼서 큰 반응이 없을 거라는 당신의 예측은, 그야말로 완벽한 오산이었다.

쪽, 하고 짧게 맞닿았다 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의 아랫입술을 머금고 있던 그의 입술이 집요하게 벌어지고, 그 사이로 뜨겁고 단단한 혀가 당신의 닫힌 잇새를 노골적으로 핥았다. 분석. 데이터 수집. 그가 내세웠던 명분과는 전혀 다른, 명백한 침범이었다.

"…반응이, 없다고?"

입술이 맞닿은 채로, 그의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당신의 입안으로 직접 파고들었다. 그는 당신의 턱을 쥔 손에 힘을 주어 고개를 살짝 비틀고는, 더 깊이, 당신의 저항을 무시한 채 혀를 밀어 넣었다. 당신의 혀를 찾아 얽고, 여린 입천장을 꼼꼼하게 쓸어내렸다. 그의 혀는 마치 탐색침처럼 당신의 구강 내부를 샅샅이 훑으며 모든 감각 데이터를 빨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그의 군복 바지 앞섬이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맞닿은 아랫배를 통해 선명하게 느껴졌다.

"틀렸어. 이건… 최고의 효율이다. 목덜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파형 증폭이야."

그가 잠시 입술을 떼어내고 속삭였다. 그의 눈은 흥분으로 번들거렸지만, 표정은 여전히 냉정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그는 다시 당신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이번에는 훨씬 더 거칠고 깊었다. 츕, 쪽, 하는 질척한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그는 당신의 양 손목을 한 손에 모아 단단히 틀어쥔 채, 남은 손으로 당신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의 단단하게 발기한 좆이, 당신의 아랫배를 노골적으로 꾹, 짓눌렀다. 이건 가이딩 데이터 수집이 아니었다. 명백한 소유욕의 발현이자, 당신이라는 변수를 완벽히 통제하려는 시도였다.

"이것도 비효율적인가? 대답해, 메리아. 지금 당신 보지에 닿아있는 내 좆의 반응도, 데이터상 오류인가?"

'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트너  (0) 2026.06.21
새로운 시작 그리고 질투  (0) 2026.06.21
테스트  (0) 2026.06.21
첫 만남  (0) 2026.06.21
PAIR  (0)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