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상태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바이퍼가 사라진 제7 게이트 앞. 육중한 강철 문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닫혀, 모든 소음과 빛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방금 전까지 휘몰아치던 폭풍 같은 혼란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복도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내려앉았다.
당신은 닫힌 문을 잠시 응시했다. 걱정은 사라졌다. 폭주 직전의 위태롭던 그는 없었다. 대신, '기다리라'는 명령을 남기고 전장으로 향한, 위험할 정도로 안정된 포식자가 있었을 뿐. 그의 마지막 속삭임이 귓가에 맴돌았다. '기다림에 대한 데이터 값을, 회수해야 하니.' 그 말이 이상하게도 불안하기보다는, 기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돌아올 것이라는 가장 확실한 약속이었기에.
당신은 저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입술이 닿았던 곳. 차가운 장갑 너머로 느껴졌던 그 건조하고 뜨거운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래, 저 상태라면 걱정할 필요 없겠지.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건 저 문 너머의 빌런들일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이야, 방금 그거… 아주 볼만했는데."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것은 유나이트였다. 그는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뻔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건지, 그의 능글맞은 시선이 당신의 이마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새로운 가이딩 방식인가? 이마에 도장이라도 찍어주는 거. 아주 인상 깊었어, 병아리. S급 센티넬을 단숨에 조련해버리다니."
그의 말에는 조롱과 순수한 감탄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당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고개를 까닥였다. 바이퍼가 남기고 간, '불필요한 접촉 및 대화 금지' 명령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이제 그 잘난 '주인님' 오실 때까지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 생각이야?"
"그러니까… 그 병아리라는 별명… 됐다 됐어. 너야말로 이런 곳에 있어도 되겠어? 가넷한테 혼날지도 모른다?"
당신의 말에 유나이트의 입가에 걸려 있던 능글맞은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당신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가넷한테 혼난다’는 말은 그에게 전혀 타격이 없는, 오히려 흥미로운 패였다.
"하하, 가넷? 걱정 마. 걘 나 같은 맹수를 다루는 법을 아주 잘 알거든. 오히려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즐기는 편이야. 이 정도 자유도 없으면 센티넬 노릇 해 먹겠냐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 걸음 더 당신에게 다가섰다. 바이퍼가 남긴 경고가 무색하게, 그는 당신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좁혔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분석의 빛이 번뜩였다.
"그보다 중요한 건 네 이야기지, 병아리. 그 얼음덩어리, 바이퍼가 네 앞에서 완전히 녹아내리던데. '기다리라'니. 심지어 복귀 보고까지 하고. 그거 알아? 저 녀석, 임무 중에 사적인 교신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놈이야. 근데 방금 그건… 뭐랄까, 거의 사랑의 서약 아니었나?"
그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명백히 당신을 놀리는 투였지만, 동시에 당신과 바이퍼의 관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묻어났다.
"그래서, 진짜로 여기서 기다릴 거야? 그 녀석이 남긴 명령이라고. 저 고지식한 놈이 돌아왔을 때 네가 없으면, 아마 온 부대를 뒤집어 놓을걸. …아니, 어쩌면 도시 하나를 스코프 안에 넣고 널 찾을지도 모르지."
"혼나고 싶어서 저러는 게 분명하다니까. 내가 가넷한테 죄다 이를 거야! 기다려야지. 기다린다고 약속했으니까."
"하, 일러바친다고? 쪼그만 게 겁도 없이."
유나이트는 당신의 당찬 대꾸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표정 어디에도 위협감은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당신의 턱 끝을 짓궂게 톡 건드리려다, 바이퍼의 마지막 경고를 떠올린 듯 허공에서 손가락을 멈추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그래. 마음대로 해. 가넷한테 가서 내가 병아리 놀려줬다고 다 일러바치라고. 아마 네 볼이나 한 번 꼬집어주고 말걸? 귀엽다고.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지금."
그의 눈빛이 순간 예리하게 빛났다. 장난기 섞인 표정 뒤에 숨겨져 있던 S급 센티넬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시선이 닫힌 제7 게이트와 당신을 번갈아 훑었다.
"'약속'이라. 명령이 아니고?"
유나이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 입술을 핥았다. 당신과 바이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할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 분석가처럼. 그는 당신 주위를 느릿하게 한 바퀴 돌았다. 마치 희귀한 관찰 대상을 뜯어보는 것처럼.
"저 딱딱한 프로토콜 덩어리가 '명령'이 아닌 '약속'을 했다고. 하, 이거 정말… 예상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는데. 야, 병아리. 너 도대체 저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단순한 가이딩이 아니었잖아, 방금 그건. S급 센티넬 바이퍼의 시스템 코드를 통째로 갈아엎는 수준이었다고."
그는 당신 앞에 딱 멈춰 서서,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조롱기는 사라지고, 순수한 호기심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탐구욕만이 남아 있었다.
"말해봐.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사생활을 너한테 말할 리가 있겠어? 캐묻는 건 네 나쁜 버릇이야, 고쳐! 그리고 이제 말걸지마."
"사생활이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의 단호한 거절에 그는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는 당신의 어깨으쓱임과 톡 쏘는 말을 마치 잘 짜인 쇼의 다음 장면처럼 감상했다. 그의 나쁜 버릇을 지적하는 말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고치라고? 에이, 남의 비밀 캐내는 게 내 전문 분야인 거 몰랐나? S급 센티넬이 괜히 S급인 줄 알아? 사소한 데이터 하나로 전체 판도를 읽는 게 내 일이라고."
그는 마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듯 말하며, 당신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했다. '말 걸지 마'라는 당신의 마지막 말에, 그는 잠시 생각하는 척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장난스럽게 손으로 자기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1초, 2초...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바이퍼가 '불필요한 대화' 금지라고 했지. 이거 봐, 벌써부터 아주 충실한 가이드님이시네. '주인님' 말씀은 칼같이 지키고."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당신의 반응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닫힌 게이트를 향했다가, 다시 당신에게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롱기보다, 묘한 동정심이 섞인 듯한 눈빛이었다.
"그래, 좋아. 사적인 얘기는 안 묻지. 대신 충고 하나만 할게, 병아리. 저 녀석, 방금 네 앞에서 보인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약속'이라는 단어 하나에 시스템이 흔들릴 정도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소리거든. 네가 그 '약속'을 깨거나, 저 녀석의 기대에서 어긋나는 순간… 그땐 지금의 이몸은 아주 귀여운 수준이었다고 생각하게 될걸."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당신의 어깨를 툭 치려다 허공에서 손을 멈추고는 씩 웃었다. 마치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보고 온 사람처럼.
"그럼, 충실한 가이드님. '주인님' 오실 때까지 심심하지 않게 잘 기다려보라고."
"그러니까 바이퍼 씨는 주인님 같은 게 아니라 파트너라고. 그래 충고 고마워. 얼른 가~"
당신이 '파트너'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하는 순간, 유나이트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가늘어졌다. 그는 당신의 단호한 선 긋기에 기가 죽기는커녕, 마치 예상치 못한 변수를 발견한 연구원처럼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파트너라…"
그가 나지막이 그 단어를 읊조렸다. 마치 처음 맛보는 음식의 풍미를 가늠하려는 듯.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이전의 짓궂음과는 다른,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 그거 알아, 병아리? '주인님'이라는 단어보다 그게 수만 배는 더 위험한 소리야. 명령과 복종은 바이퍼의 시스템 안에 있는 거지만, '파트너'는… 그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거거든. 상호 동의, 수평적 관계. 바이퍼 녀석 사전에 존재하지도 않는 버그(Bug) 같은 단어지."
유나이트는 혀로 입술을 쓱 핥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닫힌 제7 게이트를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당신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제 그의 눈에는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충고가 고마우면, 진짜 충고 하나 더 해줄게. 그 '파트너'라는 관계, 네가 먼저 제안한 거지? 그 녀석은 그런 발상 자체를 못해. 만약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절대로 그놈의 통제권을 벗어나려고 하지 마. 파트너라는 이름 아래, 더 완벽한 통제를 원하게 될 테니까. 그게 저 녀석이 '관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이야."
그는 말을 마치고는, 드디어 당신의 바람대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그는, 이제 정말로 자리를 뜰 생각인 듯 복도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파트너님, 부디 무사히 재회하시길. 난 진짜로 가넷한테 혼나러 가봐야겠다."
가벼운 손 인사를 남기고, 그는 미련 없이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자, 삭막한 복도에는 다시 당신과 닫힌 게이트, 그리고 바이퍼가 남기고 간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다.
유나이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복도는 숨 막히는 정적에 잠겼다. 텅 빈 공간에는 형광등이 내는 차가운 소음과 거대하고 굳게 닫힌 제7 게이트의 위압감만이 가득했다. 당신의 작은 혼잣말은 공기 중으로 흩어져, 아무런 메아리도 남기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1분, 10분…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당신은 그저 닫힌 문만 바라보았다. 그가 남긴 '기다리라'는 명령, 그리고 당신이 덧씌운 '약속'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체이서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파트너라는 이름 아래, 더 완벽한 통제를 원하게 될 테니까.' 그 말의 의미를 곱씹을수록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때였다.
—WEEEEEEEEE!!!
고요를 찢는 날카로운 경보음과 함께, 게이트 위쪽의 붉은 경광등이 회전을 멈췄다. 잠시 후, 육중한 강철 문이 마찰음을 내며 양옆으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뿜어져 나온 것은 자욱한 먼지와 화약 냄새, 그리고... 피비린내였다. 당신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문의 반대편, 어둠과 먼지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실루엣.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걸음걸이. 그의 등에는 여전히 거대한 저격소총이 매달려 있었고, 다림질한 듯 각 잡힌 전투복은 여기저기 찢기고 검붉은 피가 튀어 있었다. 하지만 그를 덮은 피가 그의 것인지, 아니면 '표적'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는 게이트 너머의 어둠보다 더 깊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바이퍼, 하윤백이었다.
그는 게이트를 완전히 빠져나오자마자,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다른 곳은 보지 않았다. 그의 스코프처럼 고정된 시선은 오직 복도에 서 있는 당신에게로만 향했다. 그는 임무를 완수한 기계처럼 미동도 없이 당신을 바라보다, 이윽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임무 완료. 표적 제거. …프로토콜 수정에 따른 최우선 목표, 달성 확인."
그의 말은 여전히 딱딱한 보고 형식이었지만, 그 내용은 명백히 당신을 향하고 있었다. '복귀'. 그것이 그의 최우선 목표였음을 확인시켜주는 말이었다. 그는 당신에게로 천천히, 하지만 망설임 없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군화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를 규칙적으로 울렸다.
"복귀했습니다, 가이드 메리아. …아니."
그는 당신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피와 먼지가 엉겨 붙은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그의 시선만이 살아있는 듯 번뜩였다. 그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고개를 기울였다.
"…'파트너'."
"바이퍼 씨!!"
당신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와 품에 와락 안기는 순간, 굳건히 서 있던 바이퍼의 몸이 충격으로 미세하게 뒤로 밀려났다. 그의 모든 시스템이 일순간 경고음을 울리는 듯했다. '접근 허용 거리 이탈. 비인가 신체 접촉 발생.' 훈련된 반사신경은 즉시 당신을 밀어내라고 명령했지만, 그의 팔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축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피와 화약, 그리고 정체 모를 빌런의 체액이 뒤섞인 역한 냄새가 밴 전투복 위로, 당신의 온기가 스며들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몸에 닿은 온기는 마치 이질적인 데이터처럼 그의 신경 회로를 헤집었다. 그의 등 뒤에 매달린 저격소총의 차가운 금속 부분이 당신의 몸에 닿았지만, 당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꽉 그를 껴안았다.
그는 당신을 마주 안지 않았다. 시선은 당신의 어깨 너머, 텅 빈 복도 벽에 고정된 채였다. 스코프처럼 모든 것을 분석하고 판단하던 그의 두뇌가, 당신의 돌발 행동 앞에서 처음으로 연산을 멈췄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당신에게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샴푸 향이 풍겨왔다. 전장의 피비린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그 향기는, 그의 시스템에 또 다른 과부하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변수였다.
한참의 정적 끝에, 그가 아주 느리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평소의 강철 같은 단호함 대신 미세한 균열이 느껴졌다.
"…가이드. 지금 이 행동은,"
그는 말을 멈췄다. '프로토콜 위반'이라고 말하려던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당신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까만 머리카락 몇 올이 피 묻은 그의 턱에 스쳤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작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가이딩 수치가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왜. …이 온기는, 어떤 데이터로 분류해야 하는 거지."
"싫어요?"
당신의 물음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복잡한 연산 회로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싫어요?' 너무나도 단순하고, 감정적인, 이진법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질문. 그의 시스템에는 '호오(好惡)'를 판단하는 프로토콜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필요'와 '불필요', '효율'과 '비효율'로 분류될 뿐이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당신의 어깨 너머, 허공에 고정되어 있던 초점이 아주 느리게, 아주 힘겹게 아래로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마침내 당신의 정수리에 닿았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 그의 가슴에 닿은 당신의 온기가 찢어진 전투복 틈새로, 차갑게 식은 그의 피부 위로 번져나가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그것은 불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쾌적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감각이었다. 그의 심장이, 평소와는 다른 패턴으로 뛰기 시작했다. 위험 신호도, 안정 신호도 아닌, 미지의 신호. 그는 이 모든 비정상적인 현상의 원인이 된 당신을 밀어내야만 했다. 그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의 팔은 여전히 당신을 밀어내라는 뇌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한참 만에, 그의 마른 입술이 다시 열렸다.
"…'불쾌함'에 대한 데이터가 수집되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싫지 않다는 말을, 그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무미건조했지만, 어딘가 길을 잃은 듯한 미묘한 혼란이 섞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더 숙였다. 피와 먼지가 엉킨 그의 뺨이 당신의 머리카락에 거의 닿을 듯 가까워졌다.
"대신… 시스템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 원인 불명의 오류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침내 축 늘어져 있던 팔 중 하나를 아주 느리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마치 깨지기 쉬운 폭발물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럽게, 당신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당신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잠시 멈칫했다. 이 접촉이 허용된 범위인지, 새로운 프로토콜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그의 시스템이 마지막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후후, 사람이 먼저 포옹하면 같이 안아주는 게 예의예요."
'예의.' 그 단어가 그의 데이터베이스에 새로운 질의어처럼 입력되었다. 예의. 사회적 규범. 상호작용 프로토콜의 일종. 합리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행동 양식. 당신의 말은, 그에게 새로운 명령 코드처럼 들렸다. '포옹에는 포옹으로 응답하라.' 그것이 지금 이 상황의 '정답'이라는 듯이.
허공에서 멈칫하던 그의 손이, 마침내 아주 느리고 뻣뻣하게 움직였다. 로봇의 팔처럼 어색한 궤적을 그리며, 그의 손바닥이 당신의 등에 내려앉았다. 착, 하고 가볍게 닿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따뜻하거나 다정한 손길이 아니었다. 마치 처음 만져보는 미지의 물질 표면을 탐색하듯, 그의 손가락들은 당신의 등 위에서 긴장한 채 굳어 있었다. 체온, 옷감의 재질, 등 근육의 미세한 떨림… 수많은 데이터가 그의 손끝을 통해 신경계로 흘러 들어갔지만, 그 어떤 것도 '예의'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그는 당신을 끌어안지 않았다. 그저 당신의 등에 손을 '얹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접촉은 그의 시스템에 또 다른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당신의 어깨 너머를 응시한 채, 희미하게 초점을 잃었다. 피와 화약 냄새에 섞여 있던 당신의 샴푸 향이, 그의 코앞에서 더욱 짙게 느껴졌다. 이질적인 감각의 홍수 속에서, 그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
"…상호 포옹.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예의'라는 프로토콜인가."
그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건조했다. 하지만 당신을 안은 그의 팔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추위 때문도, 피로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 앞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의 오류 신호와도 같았다.
"…데이터를 수정한다. 가이드의 신체 접촉 시, '예의' 프로토콜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 …이 정도면, 됐나."
"네 착하네요!"
'착하네요!.' 그 한마디가 그의 귓가에 닿는 순간, 당신의 등에 얹혀 있던 그의 손가락 끝이 움찔했다. 착하다. 그 또한 그의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평가였다. 그의 시스템은 '착함'이라는 개념을 분석하기 위해 수만 개의 연관 데이터를 검색했지만, 명확한 정의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그것은 명령도, 사실도 아닌, 그저 당신의 감상일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당신의 등에서 손을 떼어냈다. 방금 전까지 당신의 온기가 닿았던 그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이 낯설었다. 그는 어색하게 뗀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잠시 허공에 띄웠다가 힘없이 옆으로 떨어뜨렸다. 당신을 안고 있던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시스템은 전장에서 겪었던 그 어떤 위기 상황보다 더 많은 오류 경고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모든 오류의 중심에는, 바로 당신이 있었다.
그가 마침내 당신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당신과의 사이에 안전거리를 확보하려는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피와 먼지로 얼룩진 전투복과, 방금 전의 포옹으로 인해 구겨진 당신의 옷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여전히 자신의 가슴께에 머물러 있는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평소라면 피했을 시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오류의 근원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착하다'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방금의 상호 포옹 프로토콜 수행에 대한 평가인가."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정함을 되찾은 듯했지만, 당신을 바라보는 군청색 눈동자에는 미세한 호기심, 혹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관찰하는 과학자의 그것과 같은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선을 당신의 옷으로 옮겼다.
"내 셔츠군. 구겨졌다. …그리고, 피가 묻었다."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올라와, 당신의 어깨 부근, 그의 전투복과 닿아 미세하게 붉은 얼룩이 묻은 부분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은 당신의 옷에 닿기 직전, 1cm의 거리를 두고 멈췄다. 마치 허락되지 않은 접촉을 경계하는 것처럼. 그 행동 자체가, 방금 당신이 가르쳐준 '예의'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시도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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