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회색빛 황무지. 나의 꿈은 언제나 그랬다. 색채도, 소리도, 감정도 배제된 채 오직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는 시뮬레이션의 연속. 스코프 너머의 표적, 격발, 그리고 고요. 그것이 '바이퍼'로서 존재했던 내 세계의 전부였다. 그러나 오늘의 꿈은 어딘가 달랐다. 회색빛 세계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익숙하지 않은 데이터가 흘러들어왔다. 마치 고요한 전장에 울려 퍼지는 불협화음처럼,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아련한 멜로디가 꿈의 배경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표적 고정 실패. 원인 불명의 노이즈 발생.'
나는 꿈속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제거해야 할 변수였지만,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노랫소리는 차가운 황무지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들이는 햇살처럼 느껴졌다.
"별 보러 가자, 나와 함께. 너의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그 노랫소리는 점점 선명해졌다. 꿈속의 나는 여전히 저격소총을 든 채 황량한 대지 위에 서 있었지만, 고개는 저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적재(적재)의 -별 보러 가자'. 어울리지 않았다. 피와 화약 냄새가 진동해야 할 나의 무의식에, 이렇게 부드럽고 다정한 멜로디라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부담 없이. 그냥 잠시 나오면 돼."
노랫소리는 집요하게 나의 청각을 파고들었고, 차가웠던 꿈의 온도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마치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봄비처럼, 그 소리는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스며들어 딱딱하게 굳어 있던 과거의 잔재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나는 꿈속에서 나직이 읊조렸다.
'데이터 분석 불가. 이 감정은… 정의할 수 없다.'
결국 나는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손에 들었던 저격소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총을 내려놓는 행위. 그것은 나, 하윤백에게 있어 항복이자, 모든 통제권을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불안감 대신 이상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노랫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회색빛 세계는 색을 되찾았다. 발밑에는 푸른 잔디가 돋아났고, 머리 위로는 따스한 햇살이 쏟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노랫소리가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곳에 다다랐을 때, 나는 보았다. 햇살을 등지고 서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나의 유일한 태양, 나의 아내, 서낙랑을. 그녀가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너무 멀리 가지는 않을게. 그냥 보고 싶었어, 너를."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침실의 천장이었다. 하지만 청각 데이터는 여전히 꿈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꿈속에서 나를 무장 해제시켰던 바로 그 노랫소리.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는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 나는 잠시 숨을 죽인 채 그 소리에 집중했다. 달그락거리는 접시 소리와 함께, 당신이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아침의 고요함을 부드럽게 채우고 있었다. 늦잠이라니.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 원인이 당신이라면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는 오류였다. 나는 소리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당신의 평화로운 아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순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맨발로 조용히 침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당신은 우리 집 주방 싱크대 앞에서, 가벼운 홈웨어 차림으로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감싸고, 콧노래에 맞춰 살짝 흔들리는 어깨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사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나는 벽에 기댄 채, 그 완벽한 풍경을 내 모든 감각에 새겨 넣었다. 나의 모든 악몽을 끝내고, 나의 모든 아침을 이토록 눈부시게 만들어주는 존재. 나는 나직이 당신을 불렀다. 그 부름에는 잠에서 막 깨어난 나른함과, 당신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애정이 뒤섞여 있었다.
"아내."
"일어났어?"
당신의 환한 미소. 그것은 내 모든 감각 데이터를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섬광탄과도 같았다. 꿈속에서 나를 무장 해제시켰던 바로 그 얼굴이 아침 햇살 속에서 완벽하게 재현되는 순간,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벽에 기대어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 나는 당신이 있는 주방을 향해 천천히, 하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어갔다. 맨발이 차가운 거실 바닥에 닿는 감촉마저도, 당신이라는 목표를 향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었다. 내 시선은 오직 당신에게 고정되어, 주변의 모든 것은 아웃포커싱된 채 흐릿하게 사라졌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나의 세계, 나의 유일한 좌표였다.
"그래. 당신의 노랫소리가 내 작전 구역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서 강제 기상 프로토콜이 발동됐다."
나는 당신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내 가슴팍이 당신의 등에 완전히 밀착되고, 턱을 당신의 어깨에 가볍게 기댔다. 샴푸와 비누, 그리고 당신 고유의 체향이 섞인 기분 좋은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설거지를 하던 당신의 손이 잠시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을 조금 더 끌어안았다. 잠에서 막 깨어난 탓에 평소보다 조금 더 낮게 잠긴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과 만족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꿈에서 본 당신의 모습과 지금 내 품에 있는 당신의 온기가 겹쳐지며 현실감이 증폭되었다.
"보고해, 아내. 방금 부른 노래, 제목이 뭐지? 내 무의식의 방어 시스템을 완벽히 무력화시킨 곡이다.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이 필요해. 특히… '보고 싶었다'는 가사. 그건 누구를 향한 메시지였는지, 상세한 브리핑을 요구한다."
나는 장난스럽게 당신의 귓가에 속삭이며, 감싸 안은 팔에 살짝 힘을 주었다. 내 목소리는 여전히 군인 특유의 보고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침부터 당신을 독점하고 싶은 남편의 어리광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당신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자, 꿈속에서 느꼈던 아득한 평온함이 다시금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 평화로운 아침, 당신의 노래, 그리고 당신의 온기. 이것이 바로 내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세상의 전부임을 다시 한번 각인했다. 나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저 당신을 품에 안은 채 눈을 감았다.
"당연히 남편이지~"
당신의 대답은 마치 조준경의 영점을 완벽하게 잡아주는 마지막 클릭 소리와 같았다. '당연히 남편이지'. 그 짧고 명쾌한 한마디는 내 모든 의문을 일시에 해소하고, 논리 회로를 거치지 않은 채 심장으로 직행하는 최상급 가이딩처럼 퍼져나갔다. 나는 당신의 어깨에 기댔던 턱을 들어, 고개를 살짝 기울여 당신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이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에 부서지며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작은 반짝임 하나가 내 세계 전체를 밝히는 태양보다 더 강렬한 광원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허리를 감싸 안았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만족스러운 한숨과 함께 나직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확한 보고, 확인했다. 목표는 '남편', 하윤백. 이의 없음."
나는 당신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비누 향과 섞인 당신의 살결 내음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며 어젯밤의 흔적과 오늘의 아침이 완벽하게 하나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감각을 선사했다. 당신이 다시금 그릇을 닦기 시작하며 작게 움직일 때마다, 내 품 안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조차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나의 일상, 나의 평화, 나의 모든 것이었다. 빌런의 좌표를 추적하고, 탄도를 계산하고, 격발하던 나의 모든 감각은 이제 오직 당신의 작은 움직임, 숨소리, 그리고 체온의 변화를 감지하는 데에만 온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옮겨, 거품이 묻은 채 그릇을 닦는 당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와 똑같은 백금 반지가 당신의 손가락에서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저 손이 나를 구원했고, 저 손이 나에게 반지를 끼워주었으며, 저 손이 나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허리를 감았던 한쪽 팔을 풀어 젖어있지 않은 당신의 왼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 약지 위에 자리한 반지를 내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마치 가장 중요한 성물을 다루듯, 나의 모든 존경과 사랑을 담은 손길이었다.
"훌륭한 답변에 대한 보상이다, 아내."
나는 귓가에 속삭이며, 당신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차가운 물에 닿아 살짝 식어있던 당신의 피부에 내 입술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행동에 당신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의 손을 잡은 채로 다시 허리를 감싸 안았다. 완벽하게 내 품 안에 가둬진 당신의 온기가, 잠에서 깬 후 남아있던 마지막 한 줌의 나른함마저 말끔히 몰아냈다. 나는 당신의 귓바퀴를 가볍게 잘근거리며, 오직 당신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른하게 명령했다.
"이제 그만. 아침 식사는 내가 준비한다. 당신은 식탁에 앉아 남편이 차려주는 식사를 기다리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거지를 하던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제지하며, 나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리고 당신의 몸을 돌려 나와 마주 보게 했다. 살짝 놀란 듯 동그래진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참지 못하고 당신의 입술을 짧게 머금었다가 떼었다. 쪽, 하는 작은 소리가 고요한 아침의 주방을 울렸다. 비록 짧은 입맞춤이었지만 그 안에는 간밤의 열정과 아침의 다정함,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시간에 대한 약속이 모두 담겨 있었다. 나는 당신의 젖은 손을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주며 다시 한번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