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이트와의 통화를 끊은 후에도, 지휘관실을 채운 서늘한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쿵, 소리가 나게 의자에 다시 몸을 기댔다. 방금 전의 소동으로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갑게 식은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S급 센티넬의 감각 통제 능력이 이런 하찮은 장난 하나에 이토록 속절없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그만큼 당신과 관련된 일에는 이성이 마비된다는 증거였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던 휴대폰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화면에 새로운 불빛이 들어왔다.

당신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내 아내♡]라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이 알림창을 밝혔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이유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홀린 듯이, 잠금을 해제했다.

[남펴어언♡ 오늘 퇴근하면 같이 집 가자! 지휘관실 문앞에 서있을게! 오늘도 힘내자!! 사랑해♡♡♡]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가 방금 전까지 나를 잠식하던 모든 어두운 감정을 눈 녹듯 녹여버렸다. '남편'이라는 다정한 호칭, 함께하자는 약속, 그리고 마지막에 찍힌 선명한 '사랑해'. 나는 몇 번이고 그 메시지를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자 조금 전의 살의와 초조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당신을 향한 지독한 갈증과 애정이 가득 채웠다. 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 유나이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냉혈한 지휘관의 얼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풀어어진 미소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이 차가운 서류 더미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 나의 유일한 임무는 당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뿐이었다. 나는 책상 위의 인터컴 버튼을 눌렀다.

"페어."

[네, 지휘관님. 부르셨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언제나처럼 침착한 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남은 업무는 전부 자네에게 위임한다. 급한 용무가 생겨서, 지금 즉시 퇴근해야겠다. 결재 서류는 내일 아침 확인하지. 이상."

[네? 지, 지금 말입니까? 하지만 아직….]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페어의 말을 나는 가차 없이 잘랐다.

"이유를 물었나?"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다급하게 대답하는 부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통신을 끊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벽에 걸어두었던 제복 재킷을 팔에 걸쳤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들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단어들을 골라 답장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움직임 하나하나에 당신을 향한 마음이 담겨, 조금은 서툴고 투박하게 찍혔다.

[지금 당장. 문 앞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겠다, 나의 태양.]


메시지를 전송하자마자, 나는 지휘관실 문을 열고 성큼성큼 복도로 나섰다. 조금 전 당신이 서 있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 장소로. 지금 이 순간, 내 세계의 모든 좌표는 오직 당신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빨리 보고 싶었다. 당신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품에 가득 안고 싶었다. 문 바로 앞에 기대어 서서, 복도 저편에서 당신의 모습이 나타나기만을 오롯이 기다렸다. 마치 사격장에서 단 하나의 과녁을 기다리는 저격수처럼, 내 모든 신경은 오직 당신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복도를 울리는 가벼운 발소리 하나 없이, 당신의 존재가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났을 때. 내 모든 감각이 비명을 질렀다. 훈련된 S급 센티넬의 본능은 사고보다 빨랐다.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팔에 걸고 있던 제복 재킷을 방패처럼 휘두르는 동시에 다른 손은 허공의 적을 향해 뻗어 나갔다. 0.1초.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내 동공은 살의로 가득 찬 냉기를 뿜어내며 침입자의 급소를 겨누고 있었다. 내 능력, [Blue Lock]이 발동하기 직전의 서늘한 기운이 복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놀랐어?"

그러나 그 모든 살기를 녹여버린 것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익숙한 당신의 목소리와 코끝을 간질이는 화이트머스크 향기였다. 뻗어 나갔던 손은 허공에서 멈칫하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당신의 가는 허리를 단단히 휘감았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의 몸을 끌어당겨, 내가 기대고 있던 차가운 벽과 내 가슴팍 사이에 가두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의 등이 벽에 닿았지만 아프지 않도록 힘을 조절했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얼릴 듯 냉정했던 군청색 눈동자는, 오직 당신만을 담으며 깊고 따스한 색으로 풀어졌다.

"하아…"

나는 당신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긴장으로 멈췄던 숨을 나직하게 내쉬었다. 방금 전의 아찔했던 순간이 뒤늦게 실감 났다. 내 심장이 당신이 아닌 다른 위협으로 인식했다면, 이 복도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 아찔한 상상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군."

고개를 들자, 눈앞에 장난기 가득한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가 보였다. 나는 당신의 양 볼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말캉한 뺨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조금 전의 상황을 상기시키듯 낮고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의 태양. 아무리 당신이라도, S급 센티넬의 등 뒤에서 기척을 숨기는 건 위험한 행동이라는 걸 잊었나? 내 통제 시스템이 당신을 적으로 오인했다면 어쩔 뻔했지?"

목소리에는 질책 대신, 당신을 잃을 뻔했다는 아찔함과 안도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나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 안에 비친 내 얼굴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얼마나 당신에게 미쳐있는지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당신의 귓가에 입술을 더 가까이 가져가, 오직 당신에게만 들릴 만큼 은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규율 위반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겠군. 보고해. 지금 당장, 키스로 사죄할 건가? 아니면…"

말을 끝맺지 않고, 나는 당신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잘근거렸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다. 복도를 오가는 동료들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 세상의 중심은 오직 당신뿐이었고, 이 위험천만한 장난을 친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지휘관으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합당한 '벌'을 내려야만 했다.

"…더 심한 걸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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