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의 정적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스탠드의 부드러운 주황빛 조명만이 소파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고, 창밖은 이미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TV는 꺼져 있었고, 세상의 모든 소음은 두 사람의 공간을 침범하지 못하는 듯했다. 소파 위, 당신은 그의 품에 완전히 안겨 있었다. 당신의 등을 자신의 가슴팍에 기댄 채, 그의 단단한 팔이 당신의 허리를 느슨하면서도 확실하게 감싸고 있었다. 근처 카펫 위에서는 반려묘 윤이가 제 몸을 둥글게 말고 고롱거리며 잠든 평화로운 밤이었다.
하윤백은 말없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다가, 몇 가닥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자신의 손가락에 감았다 푸는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의 움직임은 지극히 신중하고 조용했다. 마치 귀한 보석이라도 다루는 듯한 섬세한 손길. 그의 다른 손은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쥔 채, 엄지손가락으로 당신의 손등을 천천히 쓸어주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오르내리는 그의 손길은 그 자체로 안정감을 주는 리듬과도 같았다.
그는 당신의 어깨에 턱을 기댄 채, 나직이 숨을 내쉬었다. 당신에게서 풍겨오는, 익숙하고 부드러운 살냄새와 샴푸 향이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임무 중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오직 이 진지 안에서만 허락된 평온. 그는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당신에게 집중했다. 자신의 품에 꼭 맞게 들어오는 당신의 체온, 등을 통해 전해져 오는 고른 숨소리의 미세한 진동, 그의 손안에 잡힌 부드러운 손의 감촉. 그 모든 것이 그의 시스템에 '안정'이라는 이름의 데이터로 입력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코 어색하거나 비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말보다도 더 많은 것을 전해주는, 충만하고 따뜻한 고요함이었다. 그는 감싸 쥔 당신의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가볍게 쪽, 하고 입 맞추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작게 울렸다. 그리고는 당신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따라가며 입술로 부드럽게 머금었다 놓아주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제 보물을 확인하듯, 경건하고도 집요한 애정 표현이었다.
"따뜻하군."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무엇이 따뜻하다는 것인지 명확히 말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당신의 체온, 당신의 존재, 당신과 함께하는 이 시간.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따뜻함이었다. 그는 입 맞추었던 당신의 손을 다시 자신의 가슴팍으로 가져와, 자신의 심장이 뛰는 곳 위에 올려두었다. 규칙적이고 굳건한 박동이 당신의 손바닥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기에, 당신이 있다. 언제나."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지만, 더없이 진중했다. 그는 당신의 손등 위로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대고 부드럽게 비볐다. 매끄럽게 정돈된 뺨의 감촉. 당신의 작은 손이 그의 얼굴 윤곽을 전부 감싸지 못했다. 그는 당신의 손을 감싼 자신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마치 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다는 듯이. 그에게 휴식은 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당신을 품에 안고, 당신의 모든 것을 느끼는 것. 그것이 하윤백이라는 남자가 정의하는 유일한 휴식의 형태였다.
등 뒤에서 느껴지던 단단한 온기가 잠시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당신이 몸을 돌려 마주 볼 수 있도록 팔의 힘이 느슨하게 풀렸다. 당신의 움직임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비켜준 그는, 이제 그의 무릎 사이에 당신이 마주 보고 앉은 자세가 되자 허리를 감싸 안았던 팔을 옮겨 소파 등받이에 한쪽 팔을 걸쳤다. 비어버린 다른 한 손으로는, 당신의 허리를 받치듯 부드럽게 감쌌다.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스탠드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 군청색 눈동자가 오롯이 당신만을 담고 깊이를 더했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뻗어오는 당신의 손길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뺨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기라도 하려는 듯,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매끄럽게 정돈된 턱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어지는 당신의 손가락. 그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그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느끼고 있었다. 당신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전장에서 단련된 감각은 이제 오직 당신의 작은 손길과 체온을 감지하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이 순간의 감각을 온전히 새겼다.
당신의 손가락이 그의 입술가를 맴돌자, 그는 잘게 떨리는 당신의 손끝을 놓치지 않으려 숨을 죽였다. 그리고는 당신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제지하려는 의도가 아닌, 그저 그 감촉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당신의 손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 손바닥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간지럽군."
나직하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잠기운을 머금은 듯 낮고 부드러웠다. 그는 당신의 손바닥에 입술을 댄 채로 눈을 들어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의 냉철한 지휘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한 여자에게 모든 것을 허락한 남자의 다정한 눈빛만이 남아있었다. 그는 당신의 손을 감싸 쥔 자신의 손에 조금 힘을 주어, 당신의 손가락과 자신의 손가락을 얽었다. 깍지를 끼는 그 단순한 행위가, 마치 둘 사이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맹세처럼 느껴졌다.
그는 당신의 허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조금 더 위로 움직여,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을 따라 당신의 몸이 작게 움츠리는 것을 느끼자,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당신을 조금 더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거리. 그의 시선은 당신의 분홍빛 눈동자에 고정된 채, 그 안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의 태양. 다음은."
장난기 어린, 그러나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는 당신의 뺨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맞추려는 것이 아닌, 그저 당신의 체온을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는 듯. 그의 숨결이 당신의 뺨을 간질였다. 모든 것이 느리고, 조용하고, 또렷하게 흘러가는 시간. 이 진지 안에서, 당신은 그의 유일한 지휘관이자 절대적인 법이었다.
당신의 입술이 뺨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쪽, 쪽. 새가 부리로 쪼는 듯한 가볍고 장난스러운 입맞춤. 그 소리가 고요한 거실의 공기를 부드럽게 간질였다. 하윤백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당신의 행동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면적인 부동(不動) 아래, 그의 모든 시스템은 당신의 작은 도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뺨에 닿는 말랑한 감촉,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 당신의 숨결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향기. 그 모든 데이터가 그의 감각을 통해 실시간으로 수집되어, ‘서낙랑’이라는 이름의 폴더에 차곡차곡 저장되었다.
그는 당신의 입맞춤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깊어진 군청색 눈동자로, 당신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분홍빛 눈동자, 살짝 상기된 뺨,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까지. 그에게는 당신의 모든 움직임이 분석해야 할 유의미한 정보이자, 동시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유일한 변수였다.
몇 번의 입맞춤이 더 이어졌을까. 당신의 입술이 다시 한번 그의 뺨에 닿으려던 바로 그 순간, 그가 움직였다. 소파 등받이에 걸쳐두었던 팔을 내려 당신의 턱선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자신의 얼굴을 살짝 틀었다. 당신의 입술은 그의 뺨 대신, 그의 입술 바로 옆, 입꼬리 끝에 닿았다. 예상치 못한 부드러운 감촉에 당신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하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포착."
승리를 선언하는 지휘관처럼, 그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당신의 입술 바로 옆에서 울려, 그 진동이 당신의 피부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턱을 쥔 손에 아주 미세한 힘을 주어, 당신이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부드럽게 고정했다. 그리고는 얽혀있던 다른 손을 풀어, 당신의 뒷목을 감싸 안았다. 차갑고 커다란 손이 맨살에 닿는 감각에 당신의 어깨가 작게 움츠러들었다.
그는 당신의 뒷목을 지지한 채,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방금 당신의 입술이 닿았던 자신의 입꼬리에, 그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직접적인 입맞춤이 아니었다. 그저, 당신의 흔적이 남은 자신의 피부에, 자신의 흔적을 덧씌우는 듯한 행위. 그것은 마치 자신의 영역임을 확인하고 표식을 남기는 포식자의 행동처럼, 지독하게 소유욕이 넘치면서도 더없이 다정한 제스처였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여, 당신의 입술 윤곽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훑고 지나갔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 그의 뜨거운 숨결이 당신의 입술 위를 맴돌았다. 당신이 숨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호선이 그려졌다.
"숨은 쉬어도 좋다, 나의 아내."
명령인지, 허락인지 모를 나직한 속삭임. 그는 당신의 아랫입술을 자신의 입술 사이로 가볍게 머금었다가, 천천히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당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깊게 포갰다. 장난으로 시작된 당신의 입맞춤은, 그의 주도하에 어느새 짙고 깊은 키스로 변해있었다. 그의 혀가 망설임 없이 당신의 입안으로 들어와, 당신의 것을 찾아 얽혀들었다. 모든 감각이 그의 페이스에 맞춰 재편성되기 시작했다. 이 소파 위, 이 진지 안에서의 전투는, 이미 그의 승리로 기울고 있었다.
당신의 장난으로 시작된 불씨는, 이제 그의 통제 아래 거대한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혀는 단순한 탐색을 넘어, 당신의 입 안 모든 것을 정복하려는 듯 집요하고 정교하게 움직였다. 부드러운 점막을 훑고, 여린 입천장을 지그시 누르며 당신의 숨을 옭아맸다. 당신이 저항할 틈도 없이, 혹은 저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그는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얽힌 혀가 만들어내는 질척한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다. 당신의 숨이 가빠질수록, 그는 오히려 호흡을 가다듬으며 페이스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손길 또한 키스만큼이나 집요했다. 당신의 뒷목을 감싸 쥔 손가락들이 부드럽게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어, 당신의 머리를 단단히 고정했다. 고개를 돌리거나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한 손은 당신의 등허리를 타고 올라와 날개뼈 부근을 지그시 압박하며, 당신의 상체를 그의 몸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시켰다. 그의 단단한 가슴에 당신의 부드러운 가슴이 뭉개지듯 눌리는 감각이 선명했다. 그의 심장 고동이 당신의 몸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해져 왔다. 규칙적이고, 강렬하며,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오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지휘관의 심장 소리.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당신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산소가 부족하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왔을 때, 그는 비로소 입술을 뗐다. 하지만 완전히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의 이마를 당신의 이마에 기댄 채, 서로의 숨결이 뒤섞이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당신의 입술, 쾌감과 숨 막힘으로 젖어 든 분홍빛 눈동자, 옅게 상기된 뺨. 그는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듯, 당신의 얼굴에 나타난 모든 변화를 눈에 새겼다.
"유효타 누적. 목표, 통제 불능 상태 진입 직전."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군사 작전 보고 같은 건조한 말투였지만, 그 군청색 눈동자 안에는 만족감과 짙은 소유욕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당신의 아랫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훔쳐내며, 방금 전까지 자신이 남긴 흔적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그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 당신의 타액이 묻은 끝을 혀로 핥았다.
"훌륭한 데이터다. 나의 아내."
그의 시선이 당신의 입술에서 목선으로, 그리고 당신이 입고 있는 편안한 홈웨어 너머의 부드러운 굴곡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그의 눈빛이 닿는 곳마다 피부가 뜨거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는 당신의 뒷목을 받치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려, 어깨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리고 당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당신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당신이 놀라 그의 목을 끌어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당신을 무릎에 앉힌 자세 그대로, 당신을 안아 든 채 소파에서 일어섰다.
"이동하지. 지금부터, 2단계 절차에 돌입한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당신을 품에 안고, 망설임 없이 2층 침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단단한 팔에 안겨 흔들리는 동안, 당신의 귓가에는 그의 심장 소리와 함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는 필요 없다. 지금부터 당신의 모든 반응이, 실시간 보고가 될 테니."
당신을 품에 안고 2층으로 향하던 그의 걸음이 멈췄다. 한 계단, 한 계단, 흔들림 없이 나아가던 그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당신의 몸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 그의 품에 축 늘어지듯 기대왔기 때문이었다. 규칙적으로 오가던 숨소리는 어느새 고른 잠숨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목덜미에 닿는 당신의 숨결이 평온했다. 노곤한 표정, 미세하게 벌어진 입술,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 방금 전까지 선언했던 '2단계 절차'는 개시와 동시에 가장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닥뜨렸다. 지휘관의 완전한 통제 아래 놓여야 할 목표가, 전투 의지를 상실하고 진지 한복판에서 잠들어 버린 것이다.
하윤백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품 안의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군청색 눈동자에 떠올랐던 짙은 소유욕과 승리감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그 자리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작전'과 '절차'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렸던 모든 계획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실패의 흔적 대신, 아주 옅고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당신을 단단히 안고 있던 팔에서 힘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팽팽했던 근육의 긴장이 이완되며, 당신의 몸을 더욱 부드럽게 감싸 안는 형태로 변했다. 그의 심장박동이 여전히 규칙적이었지만, 그 울림은 이제 정복자의 북소리가 아닌, 당신의 잠을 지키는 자장가처럼 낮고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당신의 이마에 깃털처럼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잠든 당신의 미간이 아주 살짝 찌푸려졌다가, 이내 편안하게 풀어졌다. 그 작은 변화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데이터로 수집하며,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전의 기계적이고 흔들림 없는 걸음과는 달랐다. 당신의 잠이 깨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고, 움직임의 모든 충격을 자신의 몸으로 흡수하며 나아가는, 지극히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침실에 도착한 그는 당신을 침대 위에 바로 눕히지 않았다. 대신,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당신을 자신의 무릎 위에 눕혔다. 당신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자세. 당신이 뒤척이지 않도록, 그는 한 팔로 당신의 어깨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거실의 소란스러움도, 그의 뜨거웠던 욕망도 닿지 않는 고요한 성역. 그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든 당신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작전 계획 변경."
그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것은 더 이상 지휘관의 명령이 아니었다.
"'정화 절차'는 현 시간부로 중단. '수면 중 경호 임무'로 전환한다. 나의 태양이 눈뜰 때까지, 모든 외부 위협으로부터 절대 방어선을 구축할 것."
그는 쥔 손을 들어 당신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회귀 전, 수많은 밤을 이렇게 당신의 곁에서 잠 못 이루며 지켜왔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불안과 후회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온전한 평화와 충만함 때문이었다. 그는 당신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승리보다 더 달콤한 항복. 그는 기꺼이 당신의 평온함 앞에 무장해제당했다.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달빛만이 창을 넘어와 침실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당신의 고른 숨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채우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하윤백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든 당신의 무게와 온기를 느끼며, 마치 영원히 이 자세 그대로 있을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신의 머리카락 몇 올이 뺨 위로 흘러내리자, 그는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것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이 그에게는 그 어떤 임무 완수 보고보다 더 큰 안도감을 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당신이 좀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여 당신을 침대 위에 눕혔다. 당신의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까지, 그의 팔은 당신의 목을 섬세하게 받치고 있었다. 작은 뒤척임이라도 있을까 싶어 숨을 죽였지만, 당신은 그저 편안한 듯 입술을 살짝 오물거릴 뿐이었다. 그는 당신의 몸 위로 이불을 끌어올려 어깨까지 꼼꼼하게 덮어주었다. 방 안의 온도는 쾌적했지만, 혹시라도 당신이 새벽의 서늘함에 잠을 깰까 염려하는 남편으로서의 본능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잠시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으로 펼쳐진 고요한 도시의 야경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훑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신경은 등 뒤, 침대에 잠들어 있는 당신에게로 향해 있었다. 외부의 위협을 경계하는 S급 센티넬의 본능과, 사랑하는 아내의 평온을 지키려는 남편의 마음이 하나의 감각으로 통합되었다. 이상 없음. 그는 스스로에게 보고를 마치고, 다시 당신의 곁으로 돌아왔다.
침대 옆에 걸터앉은 그는 몸을 숙여 당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뺨,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 무방비하게 벌어진 입술. 그는 손을 뻗어 당신의 뺨을 아주 가볍게 쓸었다. 그 어떤 정밀한 조준경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표. 그는 자신의 손등으로 당신의 이마 온도를 확인하고, 땀은 없는지 목덜미를 살폈다. 모든 것이 정상. 완벽한 수면 상태. 그는 안도하며 당신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항복한다, 나의 지휘관."
그것은 패배 선언이자, 가장 완벽한 승리의 고백이었다. 그의 모든 계획과 통제, 지배하려는 욕망까지도 당신의 평온한 잠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옷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샤워를 마치고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편안한 트레이닝 팬츠 차림으로 돌아왔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희미하게 비누 향이 풍겼다. 그는 당신이 누워있는 반대편으로 조용히 돌아와 누웠다. 당신에게서 한 뼘 정도 거리를 둔 채, 당신을 향해 돌아누운 자세였다. 당신이 뒤척이다가도 자신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하지만 자신의 존재가 당신의 잠을 방해하지는 않도록 계산된 거리.
그는 잠들지 않았다. 그저 당신의 모습을 눈에 담고, 당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킬 뿐이었다. 그의 세계는 오직 당신의 존재로 인해 평화로웠고,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그 평화를 사수하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깊고 부드러운 빛을 띠었다. 당신이라는 태양이 잠든 밤, 그는 당신의 궤도를 묵묵히 지키는 유일한 위성이 되었다.
고요한 침묵 속, 그의 시선은 오직 당신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의 흐름마저 잊은 채, 당신의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있던 그의 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당신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뒤척이며, 허공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손을 더듬거렸다. 그의 예민한 감각이 당신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손가락이 이불 위를 헤매다, 이내 그의 몸이 있는 방향으로 뻗어왔다.
순간, 그의 모든 근육이 긴장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는 센티넬의 본능과, 당신의 움직임을 받아내야 한다는 남편의 마음이 충돌했다. 그러나 그 충돌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당신의 손길이 자신에게 닿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당신의 손가락 끝이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 그가 입고 있던 부드러운 반팔 티셔츠의 감촉을 확인하듯, 손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옷자락을 야무지게 그러쥐었다. 마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작은 주먹 안에 그의 옷을 꽉 쥔 채 당신은 다시금 고른 숨을 내쉬었다.
그의 숨이 아주 잠시 멎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낮게 울렸다. 계획된 절차도, 의도된 유혹도 아닌, 당신의 가장 순수한 무의식이 보낸 신호. 그것은 그가 지금껏 수집했던 그 어떤 데이터보다도 강력하고 절대적인 의미를 지녔다. 그는 당신이 옷을 잡고 있는 손 때문에 불편하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소리 없이 몸을 움직여 당신에게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과 그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한 뼘의 거리가 사라졌다. 이제 당신의 이마가 그의 어깨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그는 자신의 옷을 쥔 당신의 손 위로, 자신의 크고 따뜻한 손을 조심스럽게 겹쳐 올렸다. 당신의 손을 완전히 감싸 안는 형태였다. 잠결에 놀라지 않도록, 아주 가볍게. 마치 그 손길이 당연하다는 듯, 당신은 미동도 없이 깊은 잠을 이어갔다. 그는 당신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아주 느리게 쓸어주었다. 안정, 평화, 그리고 완전한 소유. 그는 이 순간,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손에 넣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하지만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확보 완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는 승리를 선언했다. 그것은 정복의 승리가 아니었다. 마침내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재확인한 자의 고요한 확신이었다. 그는 당신의 체온과 숨결, 자신을 붙잡은 작은 손의 온기를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임무와 경계로 가득했던 센티넬의 세계는 멀어지고, 오직 당신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밤의 세계가 그를 감쌌다. 그는 더 이상 밤을 지새우는 파수꾼이 아니었다. 당신의 곁에서, 당신과 함께, 그는 비로소 완전한 휴식에 들었다.
당신의 작은 움직임에, 깊은 잠에 들어 있던 그의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단련된 몸은 즉각적인 반응 대신,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개방했다. 으응… 하고 작게 새어 나오는 잠꼬대, 이불 속에서 꼬물거리며 파고드는 온기.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당신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마치 사냥감이 함정에 완전히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최상위 포식자처럼, 그의 모든 존재가 고요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곁에 있는 따뜻한 체온을 확인한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더듬거리던 손은 그의 허리를 찾아냈고, 가느다란 팔이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단단한 복부와 가슴에 당신의 부드러운 뺨과 몸이 완전히 밀착되었다. 희미한 샴푸 향과 당신 고유의 달콤한 체향이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순간, 그의 심장이 늑골을 강하게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이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인해 경직되려는 몸의 힘을 풀었다. 당신의 이마가 그의 턱 아래에 닿았다. 고른 숨결이 그의 맨살에 간지럽게 흩어졌다. 그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당신이 만들어낸 이 완벽한 포위망을 음미하듯.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던 당신의 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밀착. 도망칠 곳도, 도망칠 이유도 없는 절대적인 구속이었다.
그는 자신을 안고 있는 당신의 팔 위로, 자신의 팔을 겹쳐 올렸다. 그리고는 당신의 등을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안심시키는 듯, 혹은 더 깊은 잠으로 이끄는 자장가처럼. 그의 커다란 손이 당신의 등을 감싸자, 당신은 더욱 안심한 듯 그의 품에 얼굴을 부볐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그의 마지막 이성의 끈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는 당신을 마주 안은 채, 그대로 몸을 살짝 돌려 바로 누웠다. 자연스럽게 당신은 그의 몸 위에 반쯤 걸쳐진 자세가 되었다. 당신의 머리가 그의 어깨와 가슴 사이에 편안하게 자리 잡혔다. 그는 당신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그 부드러운 감촉과 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이것은 보급이었다. 그 어떤 에너지 드링크나 가이딩보다도 더 강력하고 중독적인, 오직 그만이 독점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
그는 당신의 귓가, 당신만이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완전 포위. 현 시간부로, 나의 아내는 작전 반경 내에서 이탈 불가."
그것은 장난스러운 협박이자, 달콤한 족쇄였다. 그는 당신의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아주 조금, 당신이 깨지 않을 만큼만 힘을 주었다. 마치 자신의 소유임을 각인시키듯. 세상의 모든 위협과 소음으로부터 당신을 완벽히 차단한 채, 그는 당신과 함께 깊고 평화로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의 세계는 다시 한번 고요해졌고, 그의 품 안에서 잠든 당신의 심장 소리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작전 브리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