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점 없는 오후였다. 도심의 소음은 끓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어지럽게 피어올랐고, 아스팔트에서 반사되는 열기는 모든 풍경을 미세하게 왜곡시켰다. 그날, 하윤백과 서낙랑은 비번을 맞아 잠시 시내의 대형 서점에 들렀다. 최근 발간된 전술 이론서를 확인하려는 그의 목적과, 그저 남편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오후를 즐기고 싶은 그녀의 소망이 합쳐진, 지극히 일상적인 외출이었다. 문제는, 하윤백의 '일상'이란 개념이 일반적인 범주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지극히 사소했다. 인파로 붐비는 서점의 좁은 통로에서였다. 한 남자가 서두르며 코너를 돌다가, 미처 피하지 못한 서낙랑의 어깨를 강하게 부딪치고 지나갔다. "아!" 짧은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이 휘청였고, 그 순간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하윤백의 모든 신경계가 전투 태세로 전환되었다. 그의 시스템 안에서 ‘돌발 상황 발생. 보호 대상 1호, 외부 충격 감지’라는 붉은 경고등이 점멸했다. 남자는 잠시 멈칫했지만, "죄송합니다"라는 영혼 없는 사과를 건성으로 던지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가벼운 사과와 함께 그대로 지나쳤을, 도시의 소음 속에 묻힐 무수한 마찰음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윤백에게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규정 위반’이었다. 첫째, 남자의 이동 경로는 예측 범위를 벗어난 비정상적 동선이었다. 둘째, 충격의 강도는 단순한 스침이 아닌, 아내의 균형을 잃게 할 정도의 명백한 위협이었다. 셋째, 사후 조치가 극도로 미흡했다. 형식적인 사과, 상태 확인 부재, 책임 회피 의도. 그의 내부 분석 시스템은 순식간에 남자를 ‘잠재적 위협 요소’로 분류하고, ‘즉각적 제압 및 상황 통제’ 프로토콜을 가동시켰다. 그의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여,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아직 몇 걸음 가지 못한 남자는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그림자에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기까지."
하윤백의 목소리는 주변의 모든 소음을 얼려버릴 듯이 차가웠다. 그의 시선은 목표를 포착한 스코프처럼, 남자의 얼굴에 정확히 고정되었다. 남자는 187cm의 단단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순간적으로 주춤했지만, 이내 자신이 잘못한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맞섰다. "뭡니까? 길 좀 비키시죠." 하윤백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완벽하게 다려진 셔츠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고, 그 고요함은 오히려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그의 눈은 남자의 동선, 자세,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며 최적의 대응 방식을 산출하고 있었다.
"사과. 정식으로 다시 하도록."
그의 요구는 명령이었다. 감정은 완전히 배제된, 오직 사실과 규정에 입각한 지시. 남자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아니, 사과했잖아요. 바빠 죽겠는데 뭘 더 어쩌라고요?" 그 순간, 남자의 시선이 하윤백의 뒤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서낙랑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비웃음 섞인 헛웃음을 흘리며, 그는 보호자 행세를 하는 남편을 조롱하듯 말했다.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유난은. 마누라 단속이나 잘하시죠."
‘마누라.’ 그 단어가 하윤백의 통제 회로를 끊어버렸다.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그의 유일한 세계, 그의 태양, 그의 모든 존재 이유인 서낙랑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용납 불가능한 ‘오염’이었다.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얼음보다 차갑게 변했다. 주변의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남자의 멱살을 잡는 대신, 바로 옆 책장에 진열된 두꺼운 하드커버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남자의 눈앞, 불과 몇 센티미터 앞에서 그 책을 한 손으로, 종잇장처럼 반으로 구겨버렸다. 우두둑,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책등이 꺾이고 종이가 찢겨나갔다. 그의 손아귀 힘만으로 발생한, 명백한 물리력의 시위였다.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것은 단순한 시비가 아니었다. 목숨의 위협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두 사람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서낙랑이 하윤백의 팔을 붙잡으며 그와 남자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녀는 겁에 질린 남자를 향해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이 사람이… 원래 좀 과해서. 네, 보다시피 저희 남편도 지금 반성하고 있으니, 이번 일은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서낙랑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그녀의 등 뒤에서, 하윤백은 여전히 남자를 꿰뚫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남자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왼손 중지를 들어 올렸다. 그 동작은 그의 저격만큼이나 정교하고, 소리 없이 단호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눈은 선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네놈은 오늘 여기서 죽을 뻔했다. 오직 나의 아내 때문에 살아남은 것뿐이니, 감사하며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마라.' 그는 아내가 고개를 들기 직전, 정확한 타이밍에 손을 내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