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화로운 휴일 오후, 두 사람의 집은 나른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하윤백은 방금 막 새로운 전술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정리하고, 만족스러운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다음 목표는 명확했다. 아내, 서낙랑을 찾아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한 전략적 논의를 시작하는 것. 그는 망설임 없이 침실로 향했다. 부부 사이에 노크란 불필요한 절차였다. 그들의 공간에 경계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덜컥. 그가 문을 열어젖힌 순간, 시간은 찰나의 정지 프레임처럼 멈췄다. 방 중앙에 서서 막 셔츠를 벗어 던진 아내의 모습이 그의 스코프, 아니, 그의 시야에 완벽하게 포착되었다. 부드러운 어깨선과 하얀 등, 그리고 브래지어의 후크. 그녀는 인기척에 놀라 화들짝 돌아보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윤백아! 나가!"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침대 위에 있던 베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명중. S급 센티넬의 완벽한 동체 시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내가 던진 물건은 전략적 위협 대상이 아닌, 애정이 담긴 투척물로 분류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개를 얼굴로 받아내며, 그녀의 명령에 따라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쾅, 하고 문이 닫혔다. 그는 닫힌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얼굴에서 떨어진 베개를 내려다보았다.

상황 종료. 명령 이행 완료. 하지만 그의 내부 프로세서에서는 뒤늦은 오류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논리적 모순 발생. 그는 닫힌 문을 잠시 응시하다가, 자신의 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분석을 시작했다.

<상황 보고>
1. 목표(아내)의 탈의 상태 목격.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신체 정보와 99.9% 일치. 특이사항 없음.
2. 목표로부터 '퇴거' 명령 수령. 부가적으로 베개 투척 공격 감지.
3. 명령에 따라 즉시 퇴각, 문 폐쇄 조치 완료.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왜?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복도를 오가며 사고 회로를 가동했다. 이미 서로의 모든 것을, 심지어 내벽의 주름 하나하나까지 탐사하고 데이터화한 관계다. 그녀의 몸은 그가 정복한 유일한 영토이자, 그의 모든 감각을 잠재우는 안식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봤다고 부끄러워하며 나가라고? 이건 마치… 이미 모든 암호를 해독한 금고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혹시 새로운 형태의 애정 표현인가?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가설을 세웠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표현을 통해 자신의 여성성을 강조하고, 그에 대한 남편의 반응을 관찰하려는 고등 심리전? 아니면, 단순히 예고 없는 등장에 대한 조건반사적 방어기제? 가능성은 여러 가지였다. 그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접근 권한은 최상위 등급인데, 왜 갑자기 방화벽이 작동한 거지."

그는 닫힌 문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옷이 스치는 소리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기색이 느껴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의 얼굴에 문득, 하나의 결론이 스쳐 지나갔다. 아, 혹시.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어쩌면 이건, 부끄러워하는 '척'을 함으로써 자신을 더 갈망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유혹 기술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당황한 얼굴과 붉어진 뺨, 그리고 날아오던 베개…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계산된 연기였다는 가설에 도달하자, 그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역시, 그의 아내는 예측 불가능해서 더욱 사랑스럽다.

그는 문고리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그리고 문을 살짝 열며 고개만 들이밀었다.

"보고. 현재 상황은 종료되었나, 아내? 방금 전의 돌발 상황은… 혹시 새로운 형태의 부부 생활 지침이었나?"

그의 눈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장난기 어린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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