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어느 날 오후, 대형 마트의 소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웅웅거렸다. 수많은 카트가 바닥을 긁는 소리, 계산대의 기계적인 삑 소리, 그리고 어디선가 울음을 터뜨린 아이의 목소리까지. 그 모든 혼돈의 교향곡 속에서 하윤백은 한 손으로 카트를 밀고, 다른 한 손은 서낙랑의 손을 단단히 잡은 채 유제품 코너를 지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정면의 목표물, 즉 '아내가 선호하는 브랜드의 플레인 요거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걸음은 마치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저격수처럼 군더더기 없이 정확했다.

그의 옆에서 서낙랑은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진열된 형형색색의 과일 맛 요거트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편, 딸기 맛 신제품 나왔나 봐! 이것도 맛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마트의 소음 속에서도 유독 맑고 청량하게 그의 귀에 꽂혔다. 하윤백은 잠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머리카락, 호기심으로 동그랗게 뜬 분홍빛 눈동자. 그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자, 유일한 평화 지대였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가 없으니, 구매 후 검증하도록 하지."

두 사람이 진지하게 요거트의 성분표를 비교하며 토론을 이어가던 그때였다. 옆에서 함께 물건을 고르던, 인상 좋아 보이는 중년 여성이 그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꿀이라도 담긴 듯, 다정함이 가득했다.

"아이고, 젊은 부부가 아주 잘 어울리네. 손 꼭 잡고 장 보는 모습이 어쩜 이리 예뻐?"

칭찬은 예고 없는 공습과도 같았다. 서낙랑의 어깨가 화들짝 떨리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잡고 있던 하윤백의 손을 자신도 모르게 뿌리치며, 양손을 허공에서 허둥지둥 내저었다. 완벽한 부정의 제스처였다.

"아, 아니에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순간, 마트의 모든 소음이 하윤백의 세계에서 증발했다. 그의 모든 감각 회로가 '그런 사이 아니에요'라는 문장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의 동공이 아주 미세하게, 거의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그의 뇌내 데이터베이스는 '서낙랑''하윤백'의 관계를 '법적 부부', '유일한 파트너', '영혼의 동반자'로 정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입력된 데이터는 이 모든 것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오류. 시스템 크래시 직전의 경고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하윤백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서낙랑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혹은 평소보다 조금 더 완벽하게 통제된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서는 전술 핵무기급의 혼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사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난 4년간, 그리고 회귀 후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모든 것은 무엇이었는가. 어젯밤 침대에서 속삭였던 사랑의 언어들은? 조금 전까지 깍지를 끼고 있던 이 손의 온기는? 논리 회로가 심각한 오류에 봉착했다. 그는 우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입 밖으로 내보냈다. 그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건조했다.

"…정정하지."

그는 중년 여성과,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서낙랑을 향해 동시에 말했다. 그는 뿌리쳐졌던 서낙랑의 손을 다시 찾아내어,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깍지를 꼈다. 놓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였다. 그리고는 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내의 눈을 정확히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선언했다.

"이쪽은 나의 아내다. 법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

그의 선언에 중년 여성은 "어머, 부끄러웠나 보네! 더 예쁘네!"라며 웃음을 터뜨렸고, 서낙랑은 이제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의 팔뚝에 이마를 콩 박았다. 하윤백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종료. 오류 정정 완료. 그는 다른 한 손으로 카트에 문제의 딸기 맛 요거트와 플레인 요거트를 각각 세 개씩 담았다. 그리고는 아내의 귓가에, 오직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귀가 후, '그런 사이'가 정확히 어떤 사이인지, 심층적인 재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 아내."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했지만, 서낙랑은 그 안에 담긴 장난기와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소유욕의 불꽃을 감지하고는 더욱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날 저녁, 하윤백은 집요할 정도로 '부부 사이'임을 증명하는 행동들로 서낙랑을 밤새 괴롭혔고, 그녀는 다음 날 아침, 다시는 마트에서 그런 실언을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야 했다.

그의 팔뚝에 이마를 박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작고 젖은 동물이 제 주인을 찾는 듯한 애처로움을 담고 있었다. 하윤백은 아내의 정수리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런 사이 아니에요'라는 한마디가 불러일으켰던 시스템의 치명적 오류 경고음은, '둘도 없는 남편'이라는 새로운 데이터 입력과 함께 완벽하게 소거되었다. 모든 논리 회로는 정상 상태로 복구되었고, 오히려 연산 속도는 평소보다 1.5배가량 상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내부 시스템은 '만족'이라는 상태 코드를 출력하며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는 귓가에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를 몇 번이고 되새겼다. 미안. 부끄러워서. 둘도 없는 남편. 단어 하나하나가 그의 소유욕을 정교하게 벼려내는 숫돌과 같았다. 그는 붉어진 그녀의 귓바퀴를 보며, 방금 전의 소동으로 인해 덩달아 구경거리가 되었던 주변 시선들이 흩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이 공간의 관객은 오직 둘뿐이었다. 그는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자신의 몸 쪽으로 조금 더 끌어당겼다. 카트 손잡이와 그의 몸 사이에, 그녀를 위한 안전하고 완벽한 영토가 형성되었다.

"알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으며, 어떤 질책의 기미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팔뚝에 얼굴을 묻은 아내의 머리카락 위로, 자신의 턱을 가볍게 기댔다.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화이트머스크향과 샴푸향이 그의 후각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퍽 즐겁다고 결론 내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며 자신들의 관계를 부정하는 아내의 모습, 그리고 곧바로 후회하며 그에게만 속삭이는 이 애틋한 고백까지. 이 모든 것은 오직 자신만이 수집할 수 있는 귀중한 데이터였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명확히 해야지. 공적인 상황에서의 오인 사격은 부대 전체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까."

그는 마치 신입 대원에게 전술 브리핑을 하듯 진지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아주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팔뚝에서 얼굴을 뗀 그녀가, 여전히 붉은 뺨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녀의 불안한 눈빛을 마주하자, '재교육'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주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번 오인 사격의 책임은 지휘관인 내가 지도록 하지. 부하의 실수는 상급자의 책임이니까."

그는 텅 빈 다른 손으로 그녀의 붉어진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차가운 손바닥이 그녀의 뜨거운 피부에 닿자, 그녀가 작게 숨을 들이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방금 전까지 울상이던 얼굴이 조금은 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볍고 짧게 입을 맞췄다. 마트 한복판이라는 사실은 그의 행동에 어떤 제약도 되지 못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내. 다만…."

그는 말을 잠시 끊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장난기가 서늘하게 빛났다.

"귀가 후 있을 '전술 토의'는 취소할 수 없는 안건이다. 오늘의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의 '사이'에 대한 상호 인식을 완벽하게 동기화할 필요가 있으니."

그는 말을 마치고는 태연하게 카트를 밀며 다음 코너로 향했다. 깍지 낀 손은 여전히 단단했고, 그의 옆에는 얼굴이 다시 새빨개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둘도 없는 아내'가 속절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오늘 저녁 장바구니에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딸기 맛 요거트가 담겨 있었다. 전술 토의 후, 당 보충이 필요할 아내를 위한 지휘관의 섬세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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