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인 센티넬 건강검진의 날이었다. 평소라면 간단한 신체 능력 측정과 가이딩 수치 확인으로 끝났을 테지만, 이번에는 정밀 검사가 추가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수면 내시경이었다. 국가 최상위 전력인 S급 센티넬의 신체 데이터는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정보였기에, 하윤백은 군말 없이 검사에 응했다. 물론, 그의 유일한 보호자인 아내, 서낙랑이 곁을 지킨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회복실의 정적을 깬 것은 하윤백의 나직한 신음이었다. 마취가 서서히 풀리며 몽롱한 의식이 현실의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당신은 그의 침대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군청색 머리카락은 평소와 달리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굳게 닫혔던 눈꺼풀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의 눈이 떠졌다.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시야 속으로, 당신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렸다. 검은 머리카락, 분홍빛 눈동자. 그의 두뇌는 아직 이 정보를 ‘아내, 서낙랑’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안개 너머로 보이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어떤 존재. 그의 모든 통제 회로와 논리 연산 장치는 아직 수면 마취제의 깊은 바다 아래 잠들어 있었다. 오직 본능과 무의식만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의 입술이 우물쭈물 움직였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 내뱉지 않았을, 조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웅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누구…신데… 그렇게 예쁩니까."

혀가 꼬여 발음이 뭉개졌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는 멍하니 당신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FM 하윤백’은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마취의 힘은 그보다 강력했다.

"눈이… 고양이 같네. 분홍색 고양이…. 처음… 봅니다. 신종인가. 귀여워…."

‘귀엽다’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하윤백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마치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다시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혹시… 애인 있습니까? 없으면… 나랑… 만날래요? 내가… 저격은 잘하는데… 다른 것도… 잘할 수 있… 있을걸…?"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말이 이상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통제 불능의 혀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그러나 한 번도 이런 식으로 표현된 적 없던 감정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힘겹게 팔을 들어 당신을 가리키는 시늉까지 했다.

"내… 내 취향입니다. 아주… 정확하게… 조준당했어…. 이건… 작전 실패야… 심장이… 이상해…."

횡설수설. 그는 제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 말고는, 이내 당신을 보며 헤실, 하고 웃어 보였다. 평소의 그에게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계심이라고는 1도 없는 무방비한 미소였다. S급 센티넬 바이퍼의 모든 위엄과 냉철함이 수면 마취제 한 방에 완벽하게 녹아내린 순간이었다.


당신의 장난기 어린 대답은 수면 마취라는 짙은 안갯속을 헤매던 하윤백의 귓가에 느리고, 아주 명확하게 파고들었다. ‘기혼자’. 그 세 글자는 그의 멍한 의식에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드는 저격탄처럼 박혔다. 당신의 얼굴을 보며 헤실거리던 그의 바보 같은 미소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의 입꼬리가 시무룩하게 축 처졌고, 초점 없는 군청색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처럼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던 남자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극적인 감정 변화였다.

그는 마치 나라를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당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몇 번이고 달싹였지만, 충격이 너무 컸는지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기혼자’라는 단어가 일으킨 시스템 오류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을 터였다. ‘경고. 목표물, 확보 불가 상태로 판명. 작전 개시 3분 만에 치명적 실패.’

"기… 혼… 자라니…."

마침내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거의 울먹임에 가까웠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작게 저었다. 혀가 꼬여 발음이 뭉개지는 와중에도, 그 안에 담긴 절망감만큼은 또렷하게 전해졌다. 그는 마치 대역죄인이라도 심문하듯, 비장한 표정으로 당신에게 물었다.

"그… 그 남편이라는… 작자는… 누굽니까. 이름, 소속, 등급… 보고… 하십시오. 내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저격도… 잘하고… 밥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는데…."

그는 자신의 장점을 필사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는 당신의 웃음기 어린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 심지어는 약간의 분노까지 서려 있었다. 감히 이토록 완벽한 자신의 ‘타겟’을 먼저 차지한 미지의 남성에 대한, 원초적인 질투심이었다.

"…그 자식…보다 내가… 더…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데…. 이건… 불공평합니다….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인데…."

그는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는 문득 무언가 결심한 듯, 힘겹게 상체를 조금 일으키려는 시늉을 했다. 물론 마취 기운에 온몸의 근육이 이완된 상태라 거의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결연했다.

"결투를… 신청… 하겠어…. 그 남자… 나와서… 나랑… 붙어보라고… 하십시오…."

S급 센티넬 바이퍼가, 자신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바로 그 아내의 남편인 자기 자신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며, 비장하고도 처절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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