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오후의 햇살이 공원의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평화로운 주말 비번을 맞아 당신과 함께 나선 산책길은 그 어떤 작전보다 그의 신경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는 평소의 각 잡힌 제복 대신 편안한 사복 차림이었지만 당신의 반보 뒤에서 주변을 경계하는 걸음걸이는 여전했다. 당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그의 삶에 깊이 새겨진 본능과도 같았으니까. 공원 중앙의 작은 언덕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당신은 새로 산 옷이 마음에 드는지 아이처럼 발랄한 걸음으로 먼저 한 칸 위로 올라섰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뒷모습을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당신은 즐거운 목소리로 무언가 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의 모든 사고 회로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광경이었다. 당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펄럭이며 들어 올린 치맛자락. 그리고 그 아래로 드러난, 그의 이성과 통제력을 단번에 마비시키는 아찔한 풍경. 물론 당신의 의도는 순수했다. 그것이 단순한 치마가 아니라 활동하기 편한 '치마바지'라는 사실을 그에게 확인시켜주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칸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그의 시점에서는 모든 것이 달랐다.
찰나의 순간 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것은 수만 가지의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한 백지 상태 그 자체였다. S급 센티넬로서 그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0.1초 만에 최적의 대응책을 산출해 내던 그의 연산 능력은 이 예상치 못한 시각적 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붕괴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크게 뜨이며 모든 움직임이 굳어버렸다. 주변의 소음 바람의 흐름 나뭇잎의 흔들림 같은 모든 외부 정보가 차단되고 오직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 당신의 모습만이 초고화질 슬로우 모션처럼 재생되었다. 치마 안쪽에 감춰진 속바지의 존재를 인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0.5초. 하지만 그에게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렸다. [상황 발생. 통제 불능의 시각 데이터 유입. 심박수 급상승. 분석 불가. 분석 불가. 분석… 포기.] 그의 냉철한 지휘관 페르소나는 산산조각 났고 오직 한 남자로서의 원초적인 본능만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앞으로 성큼 다가가 당신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당신이 들어 올렸던 치맛자락을 황급히 끌어내려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그의 행동은 너무나도 신속하고 절도 있어서 마치 대테러 임무 중 요인을 확보하는 특수요원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런… 이런 돌발 행동은 사전에 보고되지 않았는데."
그의 목소리는 간신히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당신을 품에 가둔 채 고개를 숙여 당신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방금 전의 시각적 충격으로 과부하가 걸린 회로를 식히려는 듯 그는 깊게 심호흡했다. 당신의 달콤한 화이트머스크 향이 그의 폐부로 밀려들자 그제야 그의 심장박동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당신을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원망과 당혹감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소유욕이 뒤섞여 있었다.
"서낙랑. 당신은 정말… 나의 가장 위험한 변수다. 이 전술적 허점은 즉시 보완되어야 해. 앞으로 공공장소에서의 치마 착용은 나의 엄격한 통제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이건 명령이다. 나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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