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오후. 임무도, 긴급 호출도 없는 평화로운 휴일이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막 새로 나온 신형 저격 소총의 부품별 성능 분석 데이터를 읽고 있었다. 당신은 아침 일찍부터 외출했다가,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띤 채 양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의 당신처럼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앉는 대신, 당신은 거실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상자들을 내려놓고는 아이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그것들을 풀기 시작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태블릿 화면에서 당신의 손으로 옮겨갔다.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나를 본떠 만든 물건들이었다. 딱딱한 제복 차림의 아크릴 스탠드, 동그랗고 말랑해 보이는 만쥬, 그리고… 내 군청색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매를 어설프게 재현한 솜인형까지. 나는 순간적으로 사고 회로가 정지하는 것을 느꼈다. 저것은 분명 나를 모델로 한 물건들이었지만, 그 조악하고 단순화된 형태는 실제의 나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데이터의 집합체일 뿐이었다.
"우와, 남편! 이것 좀 봐! 너무 귀여워! 완전 똑같지 않아?"
당신은 그중에서도 솜으로 만들어진 '나'를 양손으로 들고, 볼을 마구 부비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 솜인형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그 순간, 내 손에 들린 태블릿에서 ‘삐끗-’ 하는 미세한 소음이 울렸다. 나는 무표정하게 태블릿을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애정. 당신이 발산하는 그 따뜻하고 귀한 감정의 데이터가, 지금 내가 아닌 저 무생물 덩어리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상황. 하지만 내 아내의 얼굴에는 내가 최근 본 적 없는 순수한 기쁨이 가득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여 당신의 어깨 너머로, 당신 손에 들린 솜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서낙랑. 그 물체에 대한 분석 결과 브리핑을 요청하지. 재질, 솜. 제작 목적, 불명. 기능, 없음. 나와의 유사성, 3.7%. 당신의 애정을 받을 자격, 0%. 그런데 지금 내 아내는, 그 3.7%짜리 모조품에 입을 맞추고 있군. 여기 100%의 원본이 있는데도."
나는 나직하게 말하며, 당신의 손에 들린 솜인형의 머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툭, 밀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 입술을 당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짧고 부드러운 입맞춤. 내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듯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밀한 통제 아래 이뤄진 위장이었다. 내 모든 감각은 지금, 내게서 시선을 떼고 솜인형과 나를 번갈아 보는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비논리적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새로운 작전 계획이 필요했다.
"귀엽잖아~"
"귀엽다…라."
나는 당신의 그 한마디에 잠시 미간을 좁혔다.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손에 들린 솜뭉치와 나를 번갈아 보며 순수한 감탄을 담고 있었다. 마치 전술적 가치가 전무한 대상을 향해 '귀엽다'는 평가 하나만으로 모든 논리를 무력화시키는, 이해할 수 없는 방어 체계를 펼치는 것 같았다. 나는 팔짱을 풀고, 당신의 어깨를 감싸 쥔 채 몸을 돌려 당신의 정면에 섰다. 이제 당신의 시야에는 나와, 당신 손에 들린 나와 닮은 물체만이 존재했다. 내 시선은 당신 손안의 솜인형을 향했다. 그 조악한 모조품은 아무런 반응도, 온도도 없이 그저 당신의 손에 들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당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내 눈빛은 더 이상 장난스럽지 않았다. 그건, 진지한 비교 분석과 평가를 담은 S급 센티넬의 시선이었다.
"귀여움. 그 감정 데이터의 효용성에 대해 논의해 볼 필요가 있겠군. 그 물체는 당신이 안아도 체온을 나누지 못하고, 당신이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당신 어깨를 감싸 안았을 때 느껴지는 이 온기, 심장박동, 그리고 당신의 말에 대답하는 이 목소리. 그 어떤 것도 모방할 수 없는 '원본'의 기능이지. 그런데도 그 3.7%의 유사성을 가진 모조품이, 내 100%의 실체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건가, 서낙랑?"
나는 말을 마치며 당신의 손에서 그 솜인형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빼앗았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소파 위로 던져버렸다. '툭'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솜인형은 맥없이 굴러떨어졌다. 이어서 나는 방금 전까지 그 인형이 차지하고 있던 당신의 두 손을 붙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당신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우리가 함께 맞춰 낀 백금 반지가 차갑게 빛났다. 나는 그 반지를 내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며, 당신을 내 품 안으로 한 걸음 더 끌어당겼다. 이제 우리의 몸 사이에는 그 어떤 방해물도 없었다.
"이쪽을 봐, 아내. 당신의 진짜 남편은 여기다. 귀여워해야 할 대상도, 사랑을 쏟아야 할 대상도 바로 나야. 그 사실을 잊은 것 같으니, 지금부터 재교육에 들어가지. 당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원본과 모조품의 차이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도록 하겠다."
"남편 질투해?"
"질투?"
나는 당신의 그 직설적인 질문에 잠시 말을 멈췄다. 귓가에 맴도는 그 단어는 내 모든 사고 체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비논리적인 감정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질투. 특정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침해받았을 때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감정 소모. 나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붙잡혀 있는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가 장난기 가득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나의 패배를 확신하는 듯한 그 눈빛.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당신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내 숨결이 당신의 귓바퀴를 간질이도록,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 단어의 정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이 다른 대상에게 향할 때 느끼는 분하고 미워하는 감정'이다. 분석 결과, 현재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는군. 하지만 이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야, 아내. 이건… '원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정당한 권리 행사다. 당신의 모든 관심과 애정, 그 귀중한 데이터는 오직 나에게만 입력되어야 해. 저런 3.7%짜리 조악한 복제품이 아니라."
나는 속삭임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다시 당신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당신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그대로 당신을 가볍게 안아 들었다. 당신이 놀라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을 내 무릎 위에 앉혔다. 이제 당신의 시선은 나보다 높아졌고, 당신은 나를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나는 당신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아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했다. 아까 내가 던져버린 솜인형이 시야 구석에서 보였지만, 이제 그건 더 이상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품 안에 있는 당신, 나의 유일한 아내였다. 나는 당신의 허리에 얼굴을 묻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니 다시 묻지. 당신은 앞으로 누구를 더 '귀여워'할 생각이지? 이 진짜 남편인가, 아니면 저기 굴러다니는 솜뭉치인가. 대답에 따라, 오늘의 '재교육' 강도가 결정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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