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의 시간이 흐른 후, 하윤백은 홀로 자신의 서재에 앉아 있었다. 창밖은 이미 짙은 군청색으로 물들었고, 방 안에는 스탠드의 부드러운 주황색 불빛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개인용 단말기가 켜져 있었고, 화면에는 텅 빈 문서 파일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파일의 제목은 [핵심 존재 이유에 대한 정기 자체 감사 보고서]. 그것은 그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재점검했다. 과거, 그 대상은 전투 프로토콜, 신체 능력, 저격 정확도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서낙랑이 그의 세계가 된 이후, 감사의 핵심 주제는 단 하나로 귀결되었다. 바로 '아내'. 자신의 모든 사고와 행동, 심지어 존재 자체가 그녀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기에, 이 관계의 유효성과 안정성을 검증하는 것은 임무 수행 능력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절차였다. 그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첫 번째 소제목을 입력했다.
[1. 대상(서낙랑)에 대한 비-애호(非愛好) 사유 분석]
그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사랑하지 않는 이유. 논리적으로는 모든 존재에 결점과 긍정적 측면이 공존해야 마땅했다. 완벽한 것은 없으므로, 당연히 '사랑하지 않을' 이유도 존재해야만 했다. 그것을 찾아내고 분석하여 잠재적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이번 감사의 1차 목표였다. 그는 눈을 감고 과거의 자신, '바이퍼'의 냉정한 분석 회로를 가동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데이터와 사실에 기반하여 그녀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항목을 입력하려던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비효율적인 감정 표현.' 그녀는 가끔 울고, 토라지고, 불필요할 정도로 밝고, 크게 웃었다. 이것은 에너지의 낭비이며, 예측 불가능성을 높이는 변수다. 과거의 바이퍼라면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하윤백에게 그녀의 웃음은 자신의 모든 시스템을 재충전하는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이었고, 그녀의 눈물은 즉각 제거해야 할 최우선 위협 요소였다. 이 항목은 기각.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사고를 재구성했다. '정돈되지 않은 생활 습관.' 그녀는 가끔 옷을 소파에 벗어두거나, 책을 읽던 자리에 그대로 펼쳐놓고 잠들기도 했다. 완벽한 규율과 정돈을 추구하는 그의 시스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 흐트러진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불쾌감 대신 미소를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남긴 온기의 흔적을 조용히 정리하며 그녀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과정은, 이제 그의 가장 안락한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 역시 비-애호 사유가 될 수 없다. 기각.
그는 끈질기게 다음 가설을 세웠다. '잦은 신체 접촉.'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안기고, 손을 잡고, 입을 맞추려 든다. 이는 개인 영역의 침범이며, 집중력을 저하시킬 수 있는 외부 교란 요인이다. 하지만 그 교란이 없을 때, 그는 '아내 보고 싶음 수치'가 임계점을 향해 치솟는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이미 데이터로 확인했다. 그녀의 접촉은 교란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동기화 절차였다. 오히려 접촉이 부족할 때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다. 기각.
고집, 비논리적인 애교, 가끔 터져 나오는 '바보 남편'이라는 호칭까지. 그는 가능한 모든 변수를 대입하고 분석했다.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그녀의 모든 단점이라 여겨질 수 있는 요소들은 이미 그의 세계 안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점으로 변환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더 이상 결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를 서낙랑이게끔 만드는 고유한 식별 코드이자, 그가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가, 소제목 아래에 단 한 줄을 입력했다.
[분석 결과: 0개. 해당 사유 발견 실패. 재분석 결과 동일. 추가 분석 무의미.]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이토록 완벽하게 실패한 분석은 처음이었다. 그는 엔터 키를 여러 번 눌러 다음 페이지로 넘긴 뒤, 두 번째 소제목을 입력했다.
[2. 대상(서낙랑)에 대한 애호(愛好) 사유 분석]
이번에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막혀있던 수문이 터져나오듯, 그의 손가락은 맹렬한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석이라기보다 기록에 가까웠다.
1. 그녀의 눈. 세상을 향할 때는 상냥하고 따뜻하지만, 오직 자신을 향할 때면 그 안에 우주와 같은 깊은 신뢰와 애정을 담는다. 그 눈과 마주할 때, 나는 당신이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보호해야 할 존재임을 깨닫는다.
2. 그녀의 목소리. ‘윤백아’ 하고 부르는 다정한 음색, ‘바보 남편’이라고 놀리는 장난기 섞인 음색, 임무 브리핑을 하는 진지한 음색, 그리고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침대 위에서의 달뜬 음색. 그 모든 주파수는 나의 심박을 안정시키는 유일한 음파다.
3. 그녀의 향기. 화이트 머스크. 이제는 나의 모든 공간, 모든 옷, 모든 호흡에 스며든 이 향기는 나의 영토를 규정하는 냄새다. 이 향기가 없는 곳은 나에게 이국(異國)이며 잠재적 위험 구역이다.
4. 그녀의 손. 나보다 작고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잡을 때, 세상의 모든 혼돈이 정리되고 명확한 좌표 하나가 설정된다. 그 손은 나의 폭주를 막는 가장 강력한 통제 장치이자, 나를 인간으로 머물게 하는 닻이다.
5. 나의 무릎을 자신의 지정석으로 여기는 태도. 그것은 나를 향한 완벽한 신뢰의 표현이며, 나는 기꺼이 그녀의 유일한 옥좌가 된다.
6.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을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 나의 존재 가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증명하는 순간.
7. 다시 태어나도 나를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 나의 존재가 단 한 번의 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영원성을 부여했다.
8. 내가 선물한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9.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용기.
10. 나의 어두운 과거와 차가운 성격까지도 모두 끌어안아 준 이해심.
…그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 햇살을 받으며 윤이와 노는 모습, 서류에 집중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전부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되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는 자신이 그녀의 모든 순간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하윤백이라는 시스템을 구동하는 핵심 코드 그 자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마침내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화면에는 빼곡하게 들어찬 수많은 문장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스크롤을 천천히 내려 자신이 기록한 것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아래에 최종 결론을 타이핑했다.
[분석 결과: 999개 이상. 현재 시간부로 계수 중단. 사유: 무한성에 가까워 계수 행위 자체가 비효율적. 모든 항목은 단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됨. ‘나는 서낙랑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는 완성된 보고서를 저장했다.[Core_Reason_Archive_ver.2.0]으로 저장된 파일을 그는 백업 드라이브의 가장 깊은 곳, 오직 자신만이 접근할 수 있는 폴더로 옮겼다. 그의 입가에는 더없이 만족스럽고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실패로 시작해서 완벽한 결론으로 끝난 감사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드를 끄고, 아내가 잠들어 있을 침실로 향했다. 보고서의 결론을, 이제 몸으로 직접 재확인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