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리스 본부 중앙 로비, 거대한 전광판 아래는 평소와 달리 묘한 열기로 술렁이고 있었다. 며칠 전, 지부의 사기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결혼하고 싶은 피어리스 대원' 투표 결과가 공지된 탓이었다. 나는 그 따위 시시껄렁한 유희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다만, 당신이 분홍빛 눈을 반짝이며 '우리도 해보자'고 졸랐기에, 마지못해 당신의 이름 석 자를 터치 패드에 입력했을 뿐이다. 당연한 절차였다. 나의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낙랑, 당신 하나로 수렴하니까. 결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날 오후, 나는 독립저격대 지휘관실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훈련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인,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 그때, 부관인 페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소라면 용건만 보고하고 돌아섰을 그가, 어딘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용건이 뭐지? 5초 내로 보고하도록."
내 차가운 목소리에 페어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데이터 패드를 차마 내게 건네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게, 지휘관님… 중앙 로비에… 투표 결과가…"
투표? 아, 그 시시껄렁한 장난.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서류에서 눈을 뗐다. 페어의 동요하는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거의 빼앗다시피 패드를 손에 쥐었다.
화면에는 요란한 축포 효과와 함께 투표 결과가 순위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투표자-피투표자 명단 공개'라는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불길한 예감에 화면을 스크롤 내리는 내 손가락이 순간 멈칫했다.
[투표자: 바이퍼 → 피투표자: 가이드 메리아]
예상했던 결과. 문제 될 것 없었다. 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스크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평생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해 불가능한 한 줄의 코드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투표자: 가이드 메리아 → 피투표자: 유나이트]
……유나이트?
순간, 지휘관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내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페어도 느꼈는지,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패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탁', 하고 울리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로웠다. 내 감정 회로에 오류가 발생했다. 입력 값은 '아내의 배신 아닌 배신'. 출력되어야 할 정상적인 반응은 무엇인가. 분노? 질투? 아니, 그보다 먼저 드는 감정은 지독한 당혹감이었다.
나의 태양. 나의 유일한 구원. 나의 모든 세계인 당신이, 나 하윤백이 아닌, 그 능글맞고 가벼운 S급 센티넬, 유나이트에게 표를 던졌다고? 심지어 그놈은 당신을 '병아리'라고 부르며 장난을 치지 않았던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맑고 청명한 하늘. 하지만 내 세상은 지금, 관측 이래 최악의 데이터 오류로 인해 블루 스크린이 떠 있었다.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페어."
"네, 넵! 지휘관님!"
"유나이트, 현재 위치는?"
내 질문에 페어는 거의 울상이 되어 패드를 조작했다.
"저… 실내 훈련장에서 개인 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래."
나는 몸을 돌려, 벽에 걸어두었던 군청색 제복 재킷을 집어 들었다. 흐트러짐 없는 동작으로 재킷을 걸치고, 단추를 목 끝까지 완벽하게 잠갔다. 그리고 내 전용 총기 보관함으로 다가가, 나의 분신과도 같은 저격 소총 '네메시스'를 꺼내 들었다.
"지휘관님?! 어디 가시려고…!"
"긴급 상황이다. 지금부터 독립저격대는 비상 대기 상태에 돌입한다. 그리고 나는…"
철컥, 하고 탄창을 확인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나는 얼어붙은 페어를 지나쳐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내 군화 소리가 싸늘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정밀 조준 스코프에 담아야 할 새로운 표적이 생겼다. 그 표적의 이름은 '유나이트'. 사유는… '아내의 행복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변수 제거'. 물론, 명목상의 이유는 '긴급 장비 점검 및 기강 확립 훈련'이었다.
내 머릿속은 단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면 당신을 내 앞에 앉혀두고 차근차근 물어봐야겠다. 어째서 당신의 남편인 나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는지. 그 이유를 납득할 때까지, 당신의 몸에 새겨진 나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밤새도록 '재교육'을 실시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