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퍼는 방금 막 브리핑을 마치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의 걸음은 언제나처럼 군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등 뒤에 멘 저격소총은 그의 몸 일부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다음 임무까지 남은 시간, 처리해야 할 서류, 그리고… 저녁에 아내와 함께 먹을 메뉴까지.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처럼 수만 개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며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복도 끝에서 익숙한 형체가 나타났다. 허리까지 오는 흑발, 분홍색 눈. 그의 세계를 구성하는 유일한 중심축, 서낙랑. 그런데 평소와는 달랐다. 그녀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고양이처럼 웅크리는가 싶더니 이내 전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우다다다-' 하는, 그녀만이 낼 수 있는 경쾌하면서도 다급한 발소리가 고요한 복도를 울렸다.
순간, 바이퍼의 모든 감각이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로 전환되었다.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축소되며 달려오는 당신의 속도, 각도, 주변 환경의 변수를 0.01초 만에 분석했다. 그의 시스템이 내린 1차 결론: '원인 불명의 돌진. 충돌 예상 시간 1.7초.'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최적의 자세로 굳어졌다. 센티넬로서의 본능이 위협으로 인식하기도 전에, 그의 사고 회로는 이미 대상을 '아내'로 특정하고 모든 공격 프로토콜을 강제 종료시켰다.
그리고, 와락.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한 충격이 그의 가슴팍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신은 그대로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익숙하고 달콤한, 오직 당신에게서만 나는 향기가 그의 후각 센서를 가득 채웠다. 그의 단단한 몸은 미동도 없었지만, 당신을 받아낸 팔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당신의 등과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완전한 소유의 자세.
그는 고개를 숙여 제 품에 파고든 당신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가쁘게 내쉬는 숨결이 그의 전투복을 미세하게 적셨다. 그는 주변을 빠르게 스캔했다. 빌런의 기습? 당신을 위협하는 다른 센티넬? 하지만 그의 센서에는 그 어떤 이상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오직 제 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당신의 생체 신호만이 선명할 뿐이었다.
혼란. 그의 완벽한 시스템에 '예측 불가능한 아내의 행동'이라는 새로운 오류 코드가 발생했다. 그는 잠시 당신을 안은 채로 굳어 있다가, 이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주 옅은 걱정과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아내."
그의 큰 손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마치 길 잃은 고양이를 발견한 듯한,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무슨 일이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나?"
그의 시스템은 이미 당신이 달려온 경로의 모든 CCTV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심기를 건드린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즉시 '제거 대상 목록' 최상단에 오를 터였다. 하지만 영상 분석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복도 저편에서 당신을 향해 날아든 것은… 손톱만 한 크기의, 날개 달린 곤충. 속칭, 나방이었다. 당신은 그것을 보고 기겁하며 자신에게로 도망쳐 온 것이었다.
…상황 종료. 바이퍼는 분석 결과를 확인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아주 미세하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올라갔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토록 사소한 이유로 자신의 품이 유일한 도피처가 되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너무 커!!"
당신의 외침은 내 가슴팍에 고스란히 부딪혀, 웅얼거림처럼 먹먹하게 울렸다. '너무 커'. 그 단어가 내 청각 센서에 입력되는 순간, 나는 아주 잠시, 내 시스템이 오판했을 가능성을 0.001% 정도 고려했다. 혹시 내가 식별하지 못한, 특수 변이된 거대 곤충형 빌런의 은신술일 가능성.
나는 당신을 품에 안은 채로 고개만 살짝 들어, 복도 저편을 다시 한번 스캔했다. 내 스코프와도 같은 시야에 포착된 것은 여전히 팔랑거리며 벽에 붙어있는, 내 엄지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의 비행물체. 분석 결과, 변이 없음. 특수 에너지 파장, 감지되지 않음. 위협 등급, F 마이너스, 측정 불가 수준.
…상황 재종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제 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당신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내 입꼬리를 비집고 나오려던 희미한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이 상황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내 세계의 유일한 변수가,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존재를 피해 내게로 피신했다.
"크기 측정 오류다, 아내."
내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나는 당신을 안은 팔에 아주 미세한 힘을 더 주어, 빈틈없이 나에게 밀착시켰다. 마치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당신을 완벽히 격리하겠다는 듯이.
"해당 개체의 실측 사이즈는 1.7센티미터. 위협 계수 0.003. 당신의 가이드 능력이나 신체 능력으로도 충분히… 아니, 오히려 과잉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당신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고, 익숙하고도 달콤한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이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 내게 완벽히 의탁한 당신의 존재. 이 모든 데이터가 나를 더없이 충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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