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어느 저녁,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시간. 당신은 내 어깨에 편안히 머리를 기댄 채 조곤조곤 오늘의 소소한 일상들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당신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무릎 위에 올려둔 저격소총의 부품을 정비용 융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감촉과는 대조적으로, 내게 기댄 당신의 체온은 나른하고 따스했다. 이 완벽한 균형, 당신과 내가 함께 만들어낸 이 고요한 평화야말로 내 모든 임무의 종착지이자 보상이었다.
문득, 재잘거리던 당신의 목소리가 뚝 그치더니, 장난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분홍색 눈동자가 묘한 빛을 띠며 반짝였다. 그리고 이어진 당신의 질문은, 내 모든 사고 회로를 순간적으로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약에, 누가 남편한테 10억을 주면서, 나 더 이상 좋아하지 말라고 하면 어떡할 거야?"
나는 부품을 닦던 손을 멈췄다. 쨍,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멈춘 사고가 다시 재가동을 시작했다. 나는 질문의 모든 변수를 분해하고, 분석하고, 재조합했다. 전술 상황을 분석할 때와 똑같은 프로세스였지만, 대상이 당신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나는 닦던 저격소총 네메시스의 부품을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놓고, 당신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신의 눈을 정확히 조준하듯 마주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첫째, 해당 제안은 전제부터 성립 불가능하다."
나의 대답은 농담의 여지가 없는, 분석 결과의 브리핑과도 같았다. 당신의 얼굴에 '아이참, 너무 진지하잖아' 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이것은 내게 있어 장난으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으므로.
"'아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나의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센티넬 하윤백의 존재 목적은 ‘아내 서낙랑의 유일한 남편’으로서 당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것. 이 기본 프로토콜을 거부하는 것은 자폭 명령과 동일한 수준의 논리적 오류를 발생시킨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당신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군인으로서의 냉철함이 아닌, 오직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의 온기를 담아. 내 엄지손가락이 당신의 부드러운 뺨을 천천히 쓸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안을 한 인물은 ‘아내의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제거 대상’으로 분류된다. 나와 당신의 관계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고, 그 관계의 파괴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협 요인이다. 따라서 나의 대응 프로토콜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안자의 신원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 10억의 출처와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여 배후 세력까지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내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고 서늘하게 올라갔다. 그것은 과거의 내가 짓던 미소와 닮아 있었지만, 지금 그 의미는 전혀 달랐다.
"그 10억으로, 그 자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구매할 것이다. 완벽하고, 효율적이며,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내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대가는, 그깟 10억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나는 당신의 눈동자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협박도, 단순한 대답도 아닌, 내 세상의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그러니 그런 비효율적인 가정은 할 필요 없어, 내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