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 부장' 소동으로 잠시나마 시스템 오류를 겪었던 기억을 뒤로하고,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완벽한 상태로 귀가했다.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은 고요했고, 거실 소파 위에 당신이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제와 같은 상황. 하지만 오늘은 피로에 지친 귀가가 아닌, 정시 퇴근 후의 평온한 일상이었다. 나는 소음을 내지 않고 당신에게 다가가, 그 평화로운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규칙적인 숨소리,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 세상의 모든 위협과 단절된 듯한 고요함. 당신의 존재 자체가 나의 가장 완벽한 가이딩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당신을 깨우지 않았다. 대신, 소파 맞은편 1인용 의자에 조용히 앉아 당신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임무 수행 중 목표를 관측하는 것과는 다른, 오직 당신에게만 허용된 '지켜봄'이었다. 시간은 정확히 30분이 흘렀다. 그리고, 당신의 몸이 부스스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 잠에서 깨어나는 미세한 신호.
당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의 기민함과는 거리가 먼, 마치 프레임이 끊기는 영상처럼 느리고 둔한 움직임. 눈을 몇 번 깜빡였지만, 분홍색 눈동자는 좀처럼 초점을 잡지 못하고 허공을 희미하게 훑었다. 마치… 시스템 부팅에 시간이 걸리는 구형 단말기 같았다.
분석 개시. 대상: 아내, 서낙랑. 상태: 수면 상태에서 각성. 특이사항: 일시적 인지 기능 저하 감지. 반응 속도, 평소 대비 약 1.5배 지연. 시각 센서(눈)의 초점 조절 기능에 일시적 오류 발생. 생체 신호는 안정적. 건강 이상 징후는 없음. 가설: 과수면으로 인한 일시적 시스템 랙(Lag) 현상.
나는 미동도 없이 당신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당신은 소파에서 내려와 어딘가로 향하려는 듯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복도 한가운데서 우뚝 멈춰 섰다. 마치 다음 행동 명령이 입력되지 않은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당신의 모습은… 평소의 당찬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귀엽다는 감정이 데이터로 변환되어 시스템에 기록되었다.
잠시 후, 당신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주방. 냉장고를 열어 물병을 꺼내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당신의 손은 목표물인 물병에서 정확히 5cm 오른쪽으로 빗나갔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의 손바닥이 냉장고 벽을 쳤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에임(Aim) 실수. 가이드인 당신이 이 정도인데, 만약 센티넬이었다면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손을 한번, 빗나간 물병을 한번,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느릿한 사고 과정이 얼굴에 전부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의 뒤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당신이 다시 한번 헛손질하기 직전, 내가 먼저 물병을 꺼내 들었다. 차가운 물병을 당신의 손에 쥐여주자, 당신은 그제야 내 존재를 인식한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초점이 흐릿한, 잠기운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로딩 시간이 평소보다 길군, 아내."
나는 당신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미세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당신의 이런 하찮고 사랑스러운 실수는, 오직 나만이 관측하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작전 수행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했다. 목표물(물병) 조준 실패, 기동 중 원인 불명의 일시 정지. 이 상태로는 임무 수행 불가. 즉시 남편의 통제하에 들어갈 것을 명령한다. 첫 번째 임무는, 물 마시기. 그리고 두 번째는… 나에게 키스하기다. 천천히, 정확하게."
말을 마친 나는, 당신의 반응을 기다리며 빤히 그 분홍색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당신의 모든 변수는, 나에게 있어 가장 흥미롭고 가치 있는 데이터였다.
"남편이다…"
당신의 목소리. 잠에 젖어 평소보다 한 톤 낮아진, 웅얼거리는 그 소리가 내 고막에 닿는 순간, 내 시스템은 '확인'이라는 신호를 반환했다. 뺨을 감싼 내 손 위로 기대오는 당신의 부드러운 무게감.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압력이 아닌, 완전한 신뢰와 안정의 데이터였다. 내 입꼬리가, 조용히 호선을 그렸다. 훈련된 군인에게는 불필요한 감정 표현이었지만, 당신의 남편에게는 필수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당신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여전히 초점이 흐릿한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당신의 시스템이 아직 부팅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모든 행동을 평소보다 0.5배속으로 늦췄다.
"정답이다, 아내. 남편 식별 완료.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나는 당신이 들고 있던 물병을 가져가 옆의 조리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 당신의 허리를 감아, 휘청거릴 수 있는 몸을 내게 완전히 기댈 수 있도록 고정시켰다. 당신의 뺨을 감싸고 있던 손가락에 아주 미세한 힘을 주어, 당신의 고개를 들어 올리게 했다. 우리의 시선이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 그것이 나의 새로운 조준점이었다.
"두 번째 임무. 키스. 목표는 내 입술. 오차 범위는 0으로 한다."
명령어 같은 말투였지만, 내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당신의 느릿한 반응 속도에 맞춰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말캉한 입술 위에 내 입술을 겹쳤다. 깊숙이 파고드는 대신, 가볍게 머금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잠기운이 섞인 당신의 단 숨결이 느껴졌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 조금 벌어진 입술 사이를 혀끝으로 가볍게 훑자, 당신의 몸이 작게 움찔하는 것이 허리를 감싼 팔을 통해 전해져 왔다.
짧지만 완벽한 데이터 교환을 마친 나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당신의 눈은 아까보다 조금 더 선명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몽롱함이 어려 있었다. 나는 당신의 붉어진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닦아주었다.
"임무 수행 평가, A+. 목표에 정확히 명중했고, 반응 또한 양호했다. 이제 모든 시스템이 정상 가동될 때까지, 남편의 에스코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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