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아

피어리스(Fearless) 본부의 공기는 언제나처럼 서늘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복도를 오가는 대원들의 발소리는 절도 있었고, 그들의 표정에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방금 전 지부장과의 정기 보고를 마치고 지휘관실로 복귀하던 중이었다. 내 손에는 다음 작전의 개요가 담긴 데이터 패드가 들려 있었고, 머릿속은 이미 표적의 예상 이동 경로와 저격 포인트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훈련장 입구에서 익숙하지만, 어딘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 것은. 훈련을 마친 듯한 젊은 센티넬 두 명이 서로를 향해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의아함이 스치기도 잠시, 그들은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서로를 와락 껴안았다가 떨어졌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전우처럼. 하지만 그들은 불과 몇 시간 전 아침 브리핑에서도 얼굴을 마주했던 사이였다.

'…비효율적인 움직임.'

나는 그 기묘한 광경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속으로 단평을 내렸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 과도한 감정 표현. 전장에서 1초의 오차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저런 군기 빠진 행동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미간이 저도 모르게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러나 그 이상한 '의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휴게실을 지나칠 때도, 식당에서도, 심지어는 내 직속 부관인 페어에게 다른 팀원이 다가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페어는 당황하면서도 어색하게 그 포옹을 받아주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나쳐 내 지휘관실로 향했다. 문이 닫히고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자, 나는 데이터 패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최근 젊은 대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인사법’에 대한 보고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단순히 짧은 시간이라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면 서로를 껴안으며 안부를 확인하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행위. 나는 그것을 전술적으로 아무 가치가 없는, 민간의 감상적인 유행이 군 내부로 잘못 흘러들어 온 사례로 분류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머릿속을 채운 불필요한 데이터들을 정리하고, 오직 나의 태양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이 가득했다. 군화 소리를 울리며 익숙한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본부를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내내, 나의 모든 신경은 곧 마주할 당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서자, 따스한 실내 공기와 함께 당신의 달콤한 체향이 나를 맞았다. 언제나처럼 나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군화부터 벗어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뻣뻣한 제복 상의를 벗어 한쪽 팔에 걸치고, 넥타이를 살짝 끌어내리며 거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모든 동작을 멈췄다.

소파 앞에 서 있던 당신이, 나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마치 어서 이리 와서 안기라는 듯한,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그 자세. 본부에서 수없이 목격했던, 비효율적이고 감상적이라 치부했던 바로 그 '인사법'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머릿속에서 수만 개의 논리와 분석이 충돌했다. 비효율적. 비논리적. 감정의 과잉 노출. 하지만 그 모든 이성적인 판단들이, 당신의 그 작은 몸짓 하나에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나의 태양이. 나의 유일한 세계가. 나를 향해 온전히 자신을 열어 보이고 있었다. 그 어떤 경계도 없이, 오직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제복 상의를 소파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언제나 각을 잡아 걸어두던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성큼성큼. 단 몇 걸음 만에 당신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당신의 그 작은 품 안으로 내 몸을 깊게 묻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작은 당신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하고 깊게. 당신의 화이트머스크 향이 폐부 깊숙이 차오르며, 하루 종일 나를 짓누르던 긴장과 피로를 눈 녹듯 녹여버렸다. 나는 당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부드러운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지, 나의 아내."

내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 책망하는 듯한 어조였지만, 그 안에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의 희열이 숨겨져 있었다. 아주, 위험한 인사법이다. 나로 하여금 모든 통제와 이성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오직 당신만을 탐하게 만드는. 나는 당신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다시는, 다른 누구에게도 이런 인사를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긴급 동기화 프로토콜이니까."

"오늘도 고생 많았어!"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는 순간, 나를 단단히 붙들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이 기어코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생 많았어’라는 그 평범한 위로는, 내게 있어 수천 발의 총성보다도 강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피로를 빌미로 당신을 더욱 갈망하게 만드는 기폭제였다. 나는 대답 대신 당신의 허리를 감은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당신의 몸이 내게 완전히 밀착되도록 만들었다. 당신의 부드러운 가슴이 내 단단한 가슴팍에 짓눌리며 형태를 바꾸는 감각이 셔츠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피로 회복 프로토콜인가. 효과가 지독할 정도로 좋군."

나는 당신의 어깨에 더욱 깊게 얼굴을 묻으며 낮게 읊조렸다. 내 뜨거운 숨결이 당신의 목덜미에 닿았다가 흩어졌다.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모든 작전 계획과 전술 데이터가 하얗게 증발하고, 오직 당신의 체온, 당신의 향기, 당신의 존재만이 내 모든 감각을 지배했다. 당신이 내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더욱 깊이 파고드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내 통제력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전히 당신을 품에 가둔 채로 그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에는 걱정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하루 종일 무감각한 표정으로 타인들을 대했던 내 얼굴이, 지금 당신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나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아마도, 지독한 갈증에 시달리는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겠지.

"보고하도록. 이 새로운 인사법은 누구에게 배웠지? 유행이라고 들었는데. 본부 내의 다른 누구에게도 이걸 시전한 사실이 있다면…"

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서늘한 소유욕은 숨길 수 없었다. 나는 말을 끝맺지 않고, 당신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쥔 손에 아주 미세한 힘을 주었다. 마치 경고라도 하듯이. 당신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렇게 팔을 벌리고, 이토록 무방비하게 품을 내어주는 상상. 그것만으로도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불쾌하고 어두운 감정이 끓어올랐다. 이 품은, 이 미소는, 이 다정함은 오직 나, 하윤백의 것이어야만 했다.

나는 당신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그 반응을 분석하며, 나는 당신을 안고 있던 팔을 풀어 어깨를 감싸 쥔 채, 그대로 당신을 이끌어 소파로 향했다. 당신을 소파에 앉히고,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당신과 눈높이를 맞췄다. 여전히 내 손은 당신의 어깨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채였다.

"앞으로는 외부에서 습득한 모든 새로운 프로토콜은 나에게 먼저 보고하고, 내 승인하에만 실행하도록. 특히, 방금 전과 같은 종류의 것은… 극히 위험하다."

나는 당신의 무릎 위에 놓인 손 위로 내 손을 겹쳐 올렸다. 결혼반지와 백금 반지가 나란히 끼워진 당신의 손가락을 천천히 쓸었다. 우리의 약속, 우리의 역사가 담긴 증표였다. 이 반지를 볼 때마다 나는 회귀 전 당신을 잃었던 그 끔찍한 고통과, 다시 당신을 얻은 이 기적 같은 현실을 동시에 떠올렸다.

"나의 모든 방어 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지휘관으로서의 판단력마저 흐리게 만들어. 그러니…"

나는 겹쳐 잡은 당신의 손을 들어, 그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들어 당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오직 나에게만 사용해야 한다, 나의 태양. 알겠나?"

"에이 남편한테만 하지~"

당신의 그 한마디는, 마치 완벽하게 조준된 탄환처럼 내 심장의 과녁 정중앙을 꿰뚫었다. 나를 옭아매던 모든 경계심과 서늘한 독점욕이 그 명랑한 목소리 하나에 안개처럼 흩어졌다.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당신의 대답이 불러온 완전한 안도감과 벅찬 희열을 온전히 감각하기 위해서였다. 긴장이 풀린 어깨가 미세하게 내려앉았고,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의 힘도 스르르 풀렸다.

"…하."

나지막한 탄식과 함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당신의 손등에 이마를 기댔다. 방금 전까지 지휘관으로서의 위엄을 지키려 했던 내 모습이 우스워질 정도였다. '재교육'과 '정리'를 운운하며 서늘한 경고를 날렸던 남자는 온데간데없이, 오직 사랑하는 아내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무장해제된 바보 같은 남편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당신의 손을 들어 올려 내 뺨에 가져다 댔다. 부드럽고 따뜻한 당신의 손바닥이 내 얼굴에 닿자, 하루 종일 유지했던 냉정한 가면이 완전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온기에 의지하듯 눈을 감고, 당신의 손바닥에 뺨을 부볐다.

"정말이지. 당신은 내가 어떤 표정을 짓게 되는지, 전혀 모르는군."

내 목소리는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고, 바로 눈앞에 있는 당신의 분홍빛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안에는 오직 나, 하윤백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심장이 충족감으로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조금 더 다가가, 당신의 무릎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리 와."

나는 당신의 허리를 다시 한번 단단히 끌어안고,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의 다리 사이에 완전히 기댄 채, 어린아이처럼 당신의 온기와 향기를 탐했다.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당신의 심장 소리가 세상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안정적인 리듬으로 나를 진정시켰다. 이 품은 나만의 것이다. 이 온기도, 이 향기도, 이 다정한 목소리도. 그 누구에게도 한 조각 내어줄 수 없는, 나의 유일한 태양.

나는 당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고개만 살짝 들어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의 턱선과 부드러운 입술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또다시 참을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큰일이다, 서낙랑. 이 인사법,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제 당신이 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강제로 시키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능글맞은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나는 당신의 잠옷 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집요한 시선으로 당신의 입술을 좇았다. 경고도, 허락도 아니었다. 이것은 오직 당신만이 해소해 줄 수 있는 갈증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었다.

"피로 회복 프로토콜, 2단계에 진입해야겠다. 보고는 생략하고, 즉시 구두로 된 보급을 요청한다. 허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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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아니에요!

평화로운 어느 날 오후, 대형 마트의 소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웅웅거렸다. 수많은 카트가 바닥을 긁는 소리, 계산대의 기계적인 삑 소리, 그리고 어디선가 울음을 터뜨린 아이의 목소리까지. 그 모든 혼돈의 교향곡 속에서 하윤백은 한 손으로 카트를 밀고, 다른 한 손은 서낙랑의 손을 단단히 잡은 채 유제품 코너를 지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정면의 목표물, 즉 '아내가 선호하는 브랜드의 플레인 요거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걸음은 마치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저격수처럼 군더더기 없이 정확했다.

그의 옆에서 서낙랑은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진열된 형형색색의 과일 맛 요거트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편, 딸기 맛 신제품 나왔나 봐! 이것도 맛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마트의 소음 속에서도 유독 맑고 청량하게 그의 귀에 꽂혔다. 하윤백은 잠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머리카락, 호기심으로 동그랗게 뜬 분홍빛 눈동자. 그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자, 유일한 평화 지대였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가 없으니, 구매 후 검증하도록 하지."

두 사람이 진지하게 요거트의 성분표를 비교하며 토론을 이어가던 그때였다. 옆에서 함께 물건을 고르던, 인상 좋아 보이는 중년 여성이 그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꿀이라도 담긴 듯, 다정함이 가득했다.

"아이고, 젊은 부부가 아주 잘 어울리네. 손 꼭 잡고 장 보는 모습이 어쩜 이리 예뻐?"

칭찬은 예고 없는 공습과도 같았다. 서낙랑의 어깨가 화들짝 떨리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잡고 있던 하윤백의 손을 자신도 모르게 뿌리치며, 양손을 허공에서 허둥지둥 내저었다. 완벽한 부정의 제스처였다.

"아, 아니에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순간, 마트의 모든 소음이 하윤백의 세계에서 증발했다. 그의 모든 감각 회로가 '그런 사이 아니에요'라는 문장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의 동공이 아주 미세하게, 거의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그의 뇌내 데이터베이스는 '서낙랑''하윤백'의 관계를 '법적 부부', '유일한 파트너', '영혼의 동반자'로 정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입력된 데이터는 이 모든 것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오류. 시스템 크래시 직전의 경고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하윤백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서낙랑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혹은 평소보다 조금 더 완벽하게 통제된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서는 전술 핵무기급의 혼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사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난 4년간, 그리고 회귀 후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모든 것은 무엇이었는가. 어젯밤 침대에서 속삭였던 사랑의 언어들은? 조금 전까지 깍지를 끼고 있던 이 손의 온기는? 논리 회로가 심각한 오류에 봉착했다. 그는 우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입 밖으로 내보냈다. 그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건조했다.

"…정정하지."

그는 중년 여성과,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서낙랑을 향해 동시에 말했다. 그는 뿌리쳐졌던 서낙랑의 손을 다시 찾아내어,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깍지를 꼈다. 놓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였다. 그리고는 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내의 눈을 정확히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선언했다.

"이쪽은 나의 아내다. 법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

그의 선언에 중년 여성은 "어머, 부끄러웠나 보네! 더 예쁘네!"라며 웃음을 터뜨렸고, 서낙랑은 이제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의 팔뚝에 이마를 콩 박았다. 하윤백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종료. 오류 정정 완료. 그는 다른 한 손으로 카트에 문제의 딸기 맛 요거트와 플레인 요거트를 각각 세 개씩 담았다. 그리고는 아내의 귓가에, 오직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귀가 후, '그런 사이'가 정확히 어떤 사이인지, 심층적인 재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 아내."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했지만, 서낙랑은 그 안에 담긴 장난기와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소유욕의 불꽃을 감지하고는 더욱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날 저녁, 하윤백은 집요할 정도로 '부부 사이'임을 증명하는 행동들로 서낙랑을 밤새 괴롭혔고, 그녀는 다음 날 아침, 다시는 마트에서 그런 실언을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야 했다.

그의 팔뚝에 이마를 박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작고 젖은 동물이 제 주인을 찾는 듯한 애처로움을 담고 있었다. 하윤백은 아내의 정수리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런 사이 아니에요'라는 한마디가 불러일으켰던 시스템의 치명적 오류 경고음은, '둘도 없는 남편'이라는 새로운 데이터 입력과 함께 완벽하게 소거되었다. 모든 논리 회로는 정상 상태로 복구되었고, 오히려 연산 속도는 평소보다 1.5배가량 상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내부 시스템은 '만족'이라는 상태 코드를 출력하며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는 귓가에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를 몇 번이고 되새겼다. 미안. 부끄러워서. 둘도 없는 남편. 단어 하나하나가 그의 소유욕을 정교하게 벼려내는 숫돌과 같았다. 그는 붉어진 그녀의 귓바퀴를 보며, 방금 전의 소동으로 인해 덩달아 구경거리가 되었던 주변 시선들이 흩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이 공간의 관객은 오직 둘뿐이었다. 그는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자신의 몸 쪽으로 조금 더 끌어당겼다. 카트 손잡이와 그의 몸 사이에, 그녀를 위한 안전하고 완벽한 영토가 형성되었다.

"알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으며, 어떤 질책의 기미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팔뚝에 얼굴을 묻은 아내의 머리카락 위로, 자신의 턱을 가볍게 기댔다.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화이트머스크향과 샴푸향이 그의 후각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퍽 즐겁다고 결론 내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며 자신들의 관계를 부정하는 아내의 모습, 그리고 곧바로 후회하며 그에게만 속삭이는 이 애틋한 고백까지. 이 모든 것은 오직 자신만이 수집할 수 있는 귀중한 데이터였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명확히 해야지. 공적인 상황에서의 오인 사격은 부대 전체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까."

그는 마치 신입 대원에게 전술 브리핑을 하듯 진지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아주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팔뚝에서 얼굴을 뗀 그녀가, 여전히 붉은 뺨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녀의 불안한 눈빛을 마주하자, '재교육'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주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번 오인 사격의 책임은 지휘관인 내가 지도록 하지. 부하의 실수는 상급자의 책임이니까."

그는 텅 빈 다른 손으로 그녀의 붉어진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차가운 손바닥이 그녀의 뜨거운 피부에 닿자, 그녀가 작게 숨을 들이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방금 전까지 울상이던 얼굴이 조금은 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볍고 짧게 입을 맞췄다. 마트 한복판이라는 사실은 그의 행동에 어떤 제약도 되지 못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내. 다만…."

그는 말을 잠시 끊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장난기가 서늘하게 빛났다.

"귀가 후 있을 '전술 토의'는 취소할 수 없는 안건이다. 오늘의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의 '사이'에 대한 상호 인식을 완벽하게 동기화할 필요가 있으니."

그는 말을 마치고는 태연하게 카트를 밀며 다음 코너로 향했다. 깍지 낀 손은 여전히 단단했고, 그의 옆에는 얼굴이 다시 새빨개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둘도 없는 아내'가 속절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오늘 저녁 장바구니에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딸기 맛 요거트가 담겨 있었다. 전술 토의 후, 당 보충이 필요할 아내를 위한 지휘관의 섬세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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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동안 머리 복복해주기

그 질문이 시작된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피어리스 본부의 심리 안정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실시된, 다소 어색하고 형식적인 설문조사. '동료와의 유대감 증진을 위한 가상 시나리오 분석'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실상은 짓궂은 동료들의 장난기 섞인 질문들이 오가는 가벼운 자리였다.

누군가가 짓궂게 던진 질문이었다. "메리아! 만약에 말이야, 딱 3분 동안! 바이퍼 지휘관님한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절대 권한이 생긴다면, 뭘 할 거야?" 그 질문에 훈련장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당신과, 당신 곁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하윤백에게로 쏠렸다. 그는 여전히 완벽한 자세로 서 있었지만, 그의 모든 감각 기관은 곁에 있는 당신의 반응을 수집하는 데 집중되고 있었다.

당신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잠시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에 주변에서는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3분이라는 시간,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절대 권한. 누군가는 그의 총을 숨기는 장난을, 다른 누군가는 평소에는 상상도 못 할 엉뚱한 명령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모두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갔다.

"꼭 끌어안고 머리 쓰다듬어줄래!"

맑고, 망설임 없는, 햇살처럼 밝은 목소리였다. 그 순간, 하윤백의 모든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절대 권한', '3분'과 같은 변수를 입력하고 온갖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그의 내부 시스템에, 당신의 대답은 모든 연산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절대값으로 입력되었다. 주변의 동료들은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따뜻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어떤 복잡한 전술이나 능력보다도 강력한, 당신의 순수한 애정 표현 앞에서 모두가 무장해제된 것이다.
 
하윤백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떤 언어보다도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는 놀라움으로 시작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세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바라보는 깊은 애정으로 가득 찼다.

그는 당신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작전 목표 변경을 건의한다, 아내."

그의 커다란 손이 당신의 손을 찾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더 이상 그의 고려사항에 없었다.

"'3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삭제하고, '절대 권한'을 영구적으로 이양하는 조건으로 변경. 지금 즉시, 해당 프로토콜의 첫 번째 세션을 시작했으면 하는데. 허가해 주겠나?"

그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몸을 살짝 숙여 자신의 머리를 당신의 손이 닿기 쉬운 위치로 가져다 댔다. 그의 군청색 머리카락이 당신의 손끝을 간질였다. 그의 행동은 명백한 '유도'였고, 그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장난스럽게 어른거렸다.

"명령 대기 중. 나의 지휘관."
 
당신의 손이 그의 머리에 닿는 순간, 하윤백은 모든 감각을 그 접점에 집중했다. 당신의 부드러운 손바닥과 가느다란 손가락이 뻣뻣하게 서 있던 그의 군청색 머리카락을 헤집고, 두피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감각. 그것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방어 기제를 무너뜨리고, 훈련으로 다져진 강철 같은 통제력을 녹여내리는 유일한 신호였다.

그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지만, 그 내부에서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전장의 데이터와 빌런의 위협 패턴을 분석하던 그의 시스템은, 당신의 손길이 만들어내는 감각 데이터 앞에서 모든 연산을 중단했다. '안정', '평온', '절대적인 신뢰'. 그 어떤 가이딩으로도 도달할 수 없었던 최상위 등급의 긍정적 신호들이 그의 존재를 가득 채웠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주변 동료들의 시선도, 훈련장의 소음도, 이 세계의 모든 위협도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오직 그의 세계에는 당신의 손길만이 존재했다.

당신이 정말 열심히, 정성을 다해 그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의 목 깊은 곳에서 아주 낮고 기분 좋은 울림이 새어 나왔다. 마치 당신의 무릎 위에서 만족스럽게 그르렁거리는 고양이 '윤이'처럼. 그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당신의 손길 아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분 좋게 몸을 늘어뜨리던 그 작은 생명체의 심정을. 그것은 복종이 아닌, 온전한 신뢰에서 비롯된 가장 완전한 형태의 항복이었다.

그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다시 마주한 그의 눈동자는 방금 전보다 한층 더 깊고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는 당신의 허리에 팔을 둘러, 당신의 몸을 자신의 품으로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당신이 머리를 쓰다듬기 편한 각도를 만들어주려는 듯한, 세심한 배려였다.

"보고. 현 시간부로 '아내의 절대 권한 행사'에 대한 모든 방해 요소를 제거한다."

그의 목소리는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기운에 젖어 있었다. 그는 당신의 손길을 온전히 느끼며, 당신의 품에 이마를 가만히 기댔다.

"그만하라는 명령은… 내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내. 당신의 권한이 소멸되지 않는 한, 이 프로토콜은 영원히 유효하다."

그는 당신의 허리를 감은 팔에 살짝 힘을 주어, 당신에게 온전히 기대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훈련장 한가운데라는 사실도 잊은 채, 그는 오직 당신이 주는 평온 속으로 기꺼이 침잠하고 있었다.

"그러니, 계속해 줘. 당신의 남편을 길들이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군."
 
당신의 손길이 갑자기 떨어져 나가자, 그의 세계를 감싸고 있던 따스한 막이 순식간에 걷혔다. 훈련장의 희미한 소음, 서늘한 공기, 멀리서 들려오는 동료들의 목소리. 차단되었던 외부 데이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하윤백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깊은 만족감으로 물들어 있던 군청색 눈동자에 미미한 균열, 즉 의문과 아쉬움이 어렸다.

그의 시스템은 즉각적으로 상황을 재분석하기 시작했다. '머리 쓰다듬기 프로토콜'의 예기치 않은 중단. 원인: 지휘관의 자의적 행동. 변수: 주변 환경 인식. 당신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그의 연산에 명확한 결론을 제공했다. 당신은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이 완벽한 상호작용을 멈춘 것이다.

그는 당신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당신이 뒤로 물러나지 못하도록 부드럽게 고정했다. 그의 이마는 여전히 당신의 품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아래에서 당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질책 대신,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은 아이와 같은 순수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명령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방금 전의 나른함이 사라지고, 본래의 낮고 차분한 톤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 그는 당신의 붉어진 뺨과 흔들리는 눈동자를 정확히 포착했다.

"프로토콜의 중단 사유를 보고하라, 아내. 외부 요인에 의한 지휘관의 심리적 불안정 발생. 이 상황은 즉시 시정되어야 할 중대 사안이다."

그는 말과는 달리, 조금도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오히려 당신의 허리에 두른 팔을 조금 더 단단히 감았다. 마치 '네가 부끄러워하는 그 모든 시선들로부터 너를 가리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당신의 배에 자신의 뺨을 부비며, 당신의 체온과 향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시 시작해. 이것은 건의가 아닌, '지휘관 절대 안정 프로토콜'에 의거한 공식 요청이다. 나의 안정은 당신의 손에 귀속되어 있다."
 
당신의 목소리에 담긴 미세한 떨림과 곤란함은 하윤백의 분석 시스템에 새로운 변수로 즉시 입력되었다. '애정행각'. '사람 많은데'. 당신이 제시한 키워드들은 그가 방금 전까지 만끽하던 절대적 평온과는 명백히 대치되는 개념이었다. 그는 당신의 허리를 감은 팔을 풀지 않은 채, 오히려 당신의 몸을 제 품 쪽으로 한 뼘 더 끌어당겨 당신의 배에 뺨을 기댔다. 당신의 체온과 심장박동이 그의 뺨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는 마치 당신의 품에 얼굴을 숨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잠시 그 자세를 유지했다. 주변의 시선과 소음은 그의 세계에서 다시 한번 멀어졌다. 그의 청각은 오직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숨소리, 당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만을 필터링하여 수집했다. 그의 시스템은 '애정행각'이라는 단어를 '상호 유대감의 외부적 발현'으로, '사람이 많다'는 상황을 '다수의 비인가 관측자가 존재하는 환경'으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결론을 도출했다. 문제의 본질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를 관측하는 '외부인'의 존재에 있다는 것을.

하윤백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당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눈빛은 '왜 멈췄는가'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찰로 차 있었다. 그는 당신의 붉어진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장난기 어린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정정 보고. '애정행각'이 아니다. 이것은 S급 센티넬의 안정성 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가이딩 절차. 전술적 행위의 일환이다."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진지했지만, 그 내용은 누가 들어도 억지에 가까웠다. 그는 보란 듯이 당신의 제복 위로 드러난 허리에 얼굴을 부비며,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그의 행동에 움찔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또한, 관측자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의 유대감이 얼마나 견고한지, 피어리스의 핵심 전력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시각적 증거가 되니까. 이것은 대외 신뢰도 향상을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다, 아내."

그는 당신의 손을 다시 가져와 자신의 머리 위에 부드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손등에 자신의 뺨을 가만히 비볐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러니 어서 나를 쓰다듬어달라'는 강력하고도 사랑스러운 압박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나의 지휘관.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당신은 지금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나의 세계를,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만드는 임무를."
 
"안돼! 나 이만 갈게!!"

당신의 외침과 함께 몸을 빼내려는 움직임은 그의 시스템에 '지휘관의 긴급 탈출 프로토콜 발동'이라는 경보를 울렸다. 얼굴은 잘 익은 과일처럼 새빨갛게 물들었고,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몸부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명백한 거절의 신호였다. 하지만 그의 팔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이 빠져나가려 할수록 허리를 감은 팔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견고한 띠가 되어 당신을 붙들었다.

하윤백은 당신의 행동을 예측했다는 듯,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계산에서 7.2%를 차지하던 '실패 확률'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실패란 다음 작전을 위한 데이터 수집 단계일 뿐,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신을 놓아주는 대신, 허리를 감았던 팔을 풀어 당신의 손목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휘어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팔로는 당신의 무릎 뒤를 받쳐, 당신이 저항할 틈도 없이 가볍게 안아 들었다.

순식간에 당신의 시야가 높아졌다. 훈련장 바닥이 멀어지고, 당신은 그의 단단한 품 안에 완벽하게 포박된 형태가 되었다. 놀라 버둥거리는 당신의 움직임에도 그는 미동도 없이 당신을 안정적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바로 눈앞에서, 장난기 어린 만족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휘관의 '전술적 후퇴' 요청 접수. 승인한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명백히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는 당신을 안아 든 채로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훈련장 구석, 인적이 드문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세계에는 오직 당신의 붉어진 얼굴과 놀란 눈동자만이 존재했다.

"현 시간부로 작전 지역을 '적의 관측으로부터 안전이 확보된 제2지휘통제실'로 이전한다. '머리 쓰다듬기 프로토콜'의 중단은 허용할 수 없으며, 이는 지휘관의 권한 포기로 간주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그의 말은 여전히 딱딱한 군대식 용어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행동은 명백히 '부끄러워하는 아내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남편'의 그것이었다. 그는 비상계단의 문을 등으로 가볍게 밀어 열고, 텅 빈 공간으로 들어섰다.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훈련장의 소음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오직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좁은 공간을 채웠다.

"임무 재개를 위한 환경 조성 완료. 이제, 방해 요소는 없다, 아내."

그는 당신을 내려놓지 않은 채, 벽에 등을 기대어 당신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품에 안긴 당신은 이제 도망칠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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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벽 작동

어느 평화로운 휴일 오후, 두 사람의 집은 나른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하윤백은 방금 막 새로운 전술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정리하고, 만족스러운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다음 목표는 명확했다. 아내, 서낙랑을 찾아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한 전략적 논의를 시작하는 것. 그는 망설임 없이 침실로 향했다. 부부 사이에 노크란 불필요한 절차였다. 그들의 공간에 경계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덜컥. 그가 문을 열어젖힌 순간, 시간은 찰나의 정지 프레임처럼 멈췄다. 방 중앙에 서서 막 셔츠를 벗어 던진 아내의 모습이 그의 스코프, 아니, 그의 시야에 완벽하게 포착되었다. 부드러운 어깨선과 하얀 등, 그리고 브래지어의 후크. 그녀는 인기척에 놀라 화들짝 돌아보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윤백아! 나가!"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침대 위에 있던 베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명중. S급 센티넬의 완벽한 동체 시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내가 던진 물건은 전략적 위협 대상이 아닌, 애정이 담긴 투척물로 분류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개를 얼굴로 받아내며, 그녀의 명령에 따라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쾅, 하고 문이 닫혔다. 그는 닫힌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얼굴에서 떨어진 베개를 내려다보았다.

상황 종료. 명령 이행 완료. 하지만 그의 내부 프로세서에서는 뒤늦은 오류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논리적 모순 발생. 그는 닫힌 문을 잠시 응시하다가, 자신의 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분석을 시작했다.

<상황 보고>
1. 목표(아내)의 탈의 상태 목격.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신체 정보와 99.9% 일치. 특이사항 없음.
2. 목표로부터 '퇴거' 명령 수령. 부가적으로 베개 투척 공격 감지.
3. 명령에 따라 즉시 퇴각, 문 폐쇄 조치 완료.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왜?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복도를 오가며 사고 회로를 가동했다. 이미 서로의 모든 것을, 심지어 내벽의 주름 하나하나까지 탐사하고 데이터화한 관계다. 그녀의 몸은 그가 정복한 유일한 영토이자, 그의 모든 감각을 잠재우는 안식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봤다고 부끄러워하며 나가라고? 이건 마치… 이미 모든 암호를 해독한 금고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혹시 새로운 형태의 애정 표현인가?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가설을 세웠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표현을 통해 자신의 여성성을 강조하고, 그에 대한 남편의 반응을 관찰하려는 고등 심리전? 아니면, 단순히 예고 없는 등장에 대한 조건반사적 방어기제? 가능성은 여러 가지였다. 그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접근 권한은 최상위 등급인데, 왜 갑자기 방화벽이 작동한 거지."

그는 닫힌 문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옷이 스치는 소리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기색이 느껴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의 얼굴에 문득, 하나의 결론이 스쳐 지나갔다. 아, 혹시.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어쩌면 이건, 부끄러워하는 '척'을 함으로써 자신을 더 갈망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유혹 기술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당황한 얼굴과 붉어진 뺨, 그리고 날아오던 베개…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계산된 연기였다는 가설에 도달하자, 그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역시, 그의 아내는 예측 불가능해서 더욱 사랑스럽다.

그는 문고리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그리고 문을 살짝 열며 고개만 들이밀었다.

"보고. 현재 상황은 종료되었나, 아내? 방금 전의 돌발 상황은… 혹시 새로운 형태의 부부 생활 지침이었나?"

그의 눈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장난기 어린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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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큐날릴 수도 있다고? 하윤백이?

바람 한 점 없는 오후였다. 도심의 소음은 끓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어지럽게 피어올랐고, 아스팔트에서 반사되는 열기는 모든 풍경을 미세하게 왜곡시켰다. 그날, 하윤백과 서낙랑은 비번을 맞아 잠시 시내의 대형 서점에 들렀다. 최근 발간된 전술 이론서를 확인하려는 그의 목적과, 그저 남편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오후를 즐기고 싶은 그녀의 소망이 합쳐진, 지극히 일상적인 외출이었다. 문제는, 하윤백의 '일상'이란 개념이 일반적인 범주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지극히 사소했다. 인파로 붐비는 서점의 좁은 통로에서였다. 한 남자가 서두르며 코너를 돌다가, 미처 피하지 못한 서낙랑의 어깨를 강하게 부딪치고 지나갔다. "아!" 짧은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이 휘청였고, 그 순간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하윤백의 모든 신경계가 전투 태세로 전환되었다. 그의 시스템 안에서 ‘돌발 상황 발생. 보호 대상 1호, 외부 충격 감지’라는 붉은 경고등이 점멸했다. 남자는 잠시 멈칫했지만, "죄송합니다"라는 영혼 없는 사과를 건성으로 던지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가벼운 사과와 함께 그대로 지나쳤을, 도시의 소음 속에 묻힐 무수한 마찰음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윤백에게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규정 위반’이었다. 첫째, 남자의 이동 경로는 예측 범위를 벗어난 비정상적 동선이었다. 둘째, 충격의 강도는 단순한 스침이 아닌, 아내의 균형을 잃게 할 정도의 명백한 위협이었다. 셋째, 사후 조치가 극도로 미흡했다. 형식적인 사과, 상태 확인 부재, 책임 회피 의도. 그의 내부 분석 시스템은 순식간에 남자를 ‘잠재적 위협 요소’로 분류하고, ‘즉각적 제압 및 상황 통제’ 프로토콜을 가동시켰다. 그의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여,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아직 몇 걸음 가지 못한 남자는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그림자에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기까지."

하윤백의 목소리는 주변의 모든 소음을 얼려버릴 듯이 차가웠다. 그의 시선은 목표를 포착한 스코프처럼, 남자의 얼굴에 정확히 고정되었다. 남자는 187cm의 단단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순간적으로 주춤했지만, 이내 자신이 잘못한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맞섰다. "뭡니까? 길 좀 비키시죠." 하윤백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완벽하게 다려진 셔츠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고, 그 고요함은 오히려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그의 눈은 남자의 동선, 자세,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며 최적의 대응 방식을 산출하고 있었다.

"사과. 정식으로 다시 하도록."

그의 요구는 명령이었다. 감정은 완전히 배제된, 오직 사실과 규정에 입각한 지시. 남자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아니, 사과했잖아요. 바빠 죽겠는데 뭘 더 어쩌라고요?" 그 순간, 남자의 시선이 하윤백의 뒤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서낙랑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비웃음 섞인 헛웃음을 흘리며, 그는 보호자 행세를 하는 남편을 조롱하듯 말했다.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유난은. 마누라 단속이나 잘하시죠."

‘마누라.’ 그 단어가 하윤백의 통제 회로를 끊어버렸다.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그의 유일한 세계, 그의 태양, 그의 모든 존재 이유인 서낙랑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용납 불가능한 ‘오염’이었다.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얼음보다 차갑게 변했다. 주변의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남자의 멱살을 잡는 대신, 바로 옆 책장에 진열된 두꺼운 하드커버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남자의 눈앞, 불과 몇 센티미터 앞에서 그 책을 한 손으로, 종잇장처럼 반으로 구겨버렸다. 우두둑,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책등이 꺾이고 종이가 찢겨나갔다. 그의 손아귀 힘만으로 발생한, 명백한 물리력의 시위였다.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것은 단순한 시비가 아니었다. 목숨의 위협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두 사람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서낙랑이 하윤백의 팔을 붙잡으며 그와 남자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녀는 겁에 질린 남자를 향해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이 사람이… 원래 좀 과해서. 네, 보다시피 저희 남편도 지금 반성하고 있으니, 이번 일은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서낙랑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그녀의 등 뒤에서, 하윤백은 여전히 남자를 꿰뚫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남자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왼손 중지를 들어 올렸다. 그 동작은 그의 저격만큼이나 정교하고, 소리 없이 단호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눈은 선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네놈은 오늘 여기서 죽을 뻔했다. 오직 나의 아내 때문에 살아남은 것뿐이니, 감사하며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마라.' 그는 아내가 고개를 들기 직전, 정확한 타이밍에 손을 내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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